동백이 아들 필구의 사춘기 걱정을 하며 정신없이 길을 건너려다 차에 치일 뻔했다. 놀란 용식. 동백의 긴 머리카락을 잡아 끌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악! 아!”
“차에 쳐죽어요, 쳐죽어. 눈을 똑바로 뜨고 사셔야죠.”
“그렇다고 사람 머리끄댕이를 그렇게 우왁스럽게…”
“아우 죄송해요, 근데 제가 손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왜요?”
“저는 결단코 동백씨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이고요. 그 부분은 저의 본능과 이성이 극적 타결을 본 부분이거든요. ‘썸’ 타는 놈이 손부터 잡겠다고 삐죽삐죽거리면 그것도 좀 양아치스럽기도 하고요. 거기다가 내심적인 이유를 곁들이자면 내가 내 여자를 귀하게 모셔야 남들도 함부로 못하는 거잖아요. 맞죠? 그래서 저는 손은커녕 발가락도 닿지 말자 작심을 했어요. 동백씨 손을 손이 아니라 어떤 닭발이나 우족이다 생각하면 그렇게 영 죽을 똥 쌀 일은 아니더라고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16일 방송 중)
세상에 없던 남주인공이 탄생했다.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의 황용식. 강하늘이 연기하는 용식은 전문직도, 재벌 2세도, 나쁜남자도 아닌, 그냥 ‘촌놈’이다. 고아원 출신 미혼모 동백 역의 공효진이 전형적인 캔디형 여주인공인데 반해 독창적인 캐릭터다.
지난달 18일 첫 방송을 내보낸 ‘동백꽃’이 시청률과 화제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16일 방송 시청률은 13.4%(닐슨코리아 조사 결과). 동시간대 시청률 단연 1위다. 화제성은 2주 연속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 조사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동백꽃’의 첫번째 매력은 바로 용식, 그 자체다.
용식은 가상의 시골 마을 옹산의 파출소 순경이다. 자신의 엄마(고두심)조차 “좀 촌스럽고 요즘 좋아하는 낭창한 맛은 없이 엄지발가락 같이 생겼다”고 말하는 외모를 가졌고, 학교 다닐 때 ‘꼴등’을 했을 만큼 공부도 못했다. 하지만 동백(공효진)을 만나 첫눈에 반한 순간부터 보여준 그의 ‘직진 순애보’는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을 만큼 강력했다. 평생을 주눅들어 살아온 동백을 용식은 “행복해질 자격이 충분히 차고 넘치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며 반짝반짝 빛이 나게 만들었다. “오늘 기분 빡친다 싶으면 혼자 쭈그러들지 말고 냅다 나한테 달려오면 된다”는 그는 동백에게 “대출도 안나오는 내 인생에 보너스 같은 사람”이 됐다.
용식에게 신선한 요소는 하나 더 있다. 몹시 ‘경우 바른’ 엄마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딱한 처지의 여주인공이 사랑에 빠졌을 때 등장하는 남주인공의 엄마는 뻔했다.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물불 가리지 않으며 안하무인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동백꽃’의 장르는 단순한 멜로가 아니다. 연쇄 살인범 ‘까불이’를 등장시킨 스릴러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동백과 용식의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맺을 것인가가 아니라(이들의 사랑은 마음 졸이며 볼 필요가 없다. 그냥 ‘힐링’으로 즐기면 된다), 까불이의 정체다. 지금까지 등장한 까불이 후보는 파출소 소장, 흥식이, 흥식 아버지, 야구부 코치, 떡집 아저씨 등으로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랑 찾기보다 후보군이 더 광범위하다.
주인공은 물론, 이름 없는 단역까지 연기력 구멍이 없다는 점도 ‘동백꽃’의 미덕이다. 특히 향미 역의 손담비는 멍한 표정과 무덤덤한 말투로 드라마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