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고 나면 평범한 악(惡)의 모습에 놀라곤 한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을 죽이겠다고 쓴 이는 흉악한 살인범의 모습이 아닌 모자 달린 티셔츠 입은 대학생의 모습으로 법정에 나타났다. 허무한 악의 얼굴에 많은 연예인이 고소를 취하하곤 한다. 악플러가 아직 어려서, 직업이 멀쩡해서, 가족이 있어서, 혹은 명문대생이라서. 익명의 가해자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때 오히려 피해자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이상한 지위를 갖는다. 평범해져서다.
스물다섯 젊은 별의 비보를 책임질 특별한 악마가 있을까. 유량으로 측정해야 할지 저량으로 해야 할지도 모를 수많은 악플 중 어떤 것의 멱살을 잡을까. “나만 달았냐”, 그렇다면 첫 번째 악플 탓인가. 11년 전 고(故) 최진실씨 이름을 따 ‘사이버 모욕죄’를 만들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일까.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에겐 100만원쯤 내고 욕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 사법부가 문젠가. “SNS를 옮긴 것뿐”인 기사는 어떤가. “나는 설리 기사 안 썼다”며 고고한 벼루질을 하는 기자들도 결국 “보는 사람이 있으니 쓴다”는 관심 비즈니스의 자본 위에 앉아 있다.
“연예인이 누구 덕에 저렇게 먹고 사는데”란 생각은 사회 이곳저곳을 평범하게 흘러다녔다. 이제 와 “그녀가 누구 탓에 이렇게 갔는데”를 생각해 보면, 아까 ‘그 누구’가 ‘이 누구’란 걸 알게 된다. “연예인이니까”란 이유로 너무 많은 게 정당화됐다. 아름다워서, 재능있어서, 그 아름다움과 재능을 업으로 삼아서, 솔직해서, 당당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컸다. 유명세(稅)가 너무 비싸다.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