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특사가 갔다 왔지?”(정대철 전 대표)
“아이구 형님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 비밀인데”(이낙연 총리)
지난주 총리공관서 원로들 모임
이 총리 “문 대통령 가면 좋겠는데
물밑 얘기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여권 “서훈 원장 방일 얘기 돌아”
정 전 대표는 회동 수일 전 “한국 정부 고위인사가 일본 특사로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만찬 자리에서 이 총리에게 물어보자 깜짝 놀란 얼굴로 “어떻게 알았느냐”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이 총리는 2003년 정대철 민주당 대표 시절 그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서울대 법대 8년 후배(정 전 대표 62학번, 이 총리 70학번)이기도 하다.
정 전 대표가 “얼핏 듣기로 4명이 일본 특사로 갔다 왔다지?”라고 재차 묻자 이 총리는 “그거 확인해줄 수 없어요, 형님”이라고 했다.
이날 회동은 정 전 대표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정 전 대표는 1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한 달 전쯤 총리에게 정치 원로들 밥 한번 사라고 해서 성사된 자리”라고 설명했다. 만찬에는 정 전 의원 외에 권노갑ㆍ이상수ㆍ박석무·박실·최인기ㆍ허운나 전 의원 등 14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민주당 시절 이 총리와 함께 정치를 했던 인사들이다. 이 자리에서 우연찮게 정부의 ‘비밀 특사외교’ 얘기가 나온 셈이다. 하지만 이 총리는 특사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함구했다고 한다.
이 총리는 오는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다. 이 총리는 7일 정 전 대표와 있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 갈 수 있으면 제일 좋겠는데 (물밑) 얘기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제가 정부 대표로 일왕 즉위식에 가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만나 경청해보겠다. 옛날부터 아베 총리와 가까운데 얘기를 잘 듣고 오겠다”고 했다고 한다.
최근 특사로 일본을 다녀온 ‘다 알만한 유명 인사’와 관련해 정치권에선 서훈 국정원장의 이름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의 한 일본통 의원은 “근간에 서 원장이 일본에 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4일 도쿄에서 벌인 주일 한국대사관 국감 당시 “호텔에 가니까 (일본산) 화(和)과자가 놓여있어 봤더니 서 원장이 보냈더라. 서 원장이 뛰고 있다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한ㆍ일 관계 개선을 위한 서훈-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의 핫라인 가동설도 있다. 2006년 1차 아베 내각 당시 총리 비서관을 맡아 아베 최측근으로 꼽히는 기타무라 국장은 지난달 한국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에 취임했다. 2011년부터 국장 취임 전까지는 내각관방정보관으로 지냈다. 서 원장은 지난해 남북대화 국면 때 세 차례 일본 특사로 방문해 아베 총리에게 방북결과를 설명한 뒤 기타무라 당시 정보관과 면담한 적이 있다.
7일 회동에선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도 화두에 올랐다. 참석자 중 10명 남짓이 ‘정국 정리를 위해 조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 의견을, 서너 명이 ‘조 장관 지지’론을 폈다고 한다. 이 총리는 발언을 경청한 뒤 “여러분 의견을 잘 반영해서 대통령과 의논해보겠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다들 정치 몇 선(選)씩 한 양반들인데 나라가 이렇게 두 쪽으로 갈려서는 전혀 대통령에게 이롭지 않다, 정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막걸리 만찬 초반에는 좌장격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이 총리가 각종 여론조사기관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 총리가 앞으로 잘 돼서 큰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덕담을 건넸다. 권 의원은 몸이 불편한 부인을 돌보기 위해 회동 도중 먼저 자리를 떴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