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까지 100명이 근무하던 공장이지만 지금은 20명의 모니터링 인력만 남아있다. 일자리가 줄더라도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데 노조가 동의한 결과다. 스웨덴의 대표적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SKF는 100년 넘게 첨단을 추구하며 진화했다. 노사상생과 협력은 그 바탕이 됐다.
진화 거듭하며 첨단화 세계 1위로
기술 강소기업 ‘텐테’의 비결
피아노용 등 연간 1000만개 생산
정숙·내구성…명품 캐리어 바퀴도
소재 개발 집중, 침대엔 관심 없어
‘히든 챔피언’을 찾은 건 이들 기업을 통해 한국 ‘소부장’ 산업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히든 챔피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랜 축적(蓄積)의 시간과 도전을 두려워 않는 혁신(革新)의 시간, 미래를 위해 협력한 화합(和合)과 상생의 생태계(生態系)를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핵심소재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면서 산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8월에는 안보상 수출심사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도 제외됐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이라던 한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세계 최고의 완제품을 만들지만 이른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은 미국·일본·유럽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는 한국의 ‘소부장’ 기업 모두가 무턱대고 유럽이나 이스라엘 기업 사례를 좇을 수 없지만 이들 사례에 대한 학습을 통해 국내 산업구조와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모든 ‘소부장’을 대체할 순 없다.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만한 분야를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도록 민간 위주 기업환경을 만들고 자본시장의 평가방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20세기 초반 회가내스는 금속을 가루로 만들어 가마에 구워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전까지 금속제품은 주조(녹여서 틀에 찍는 것)하거나 단조(고온에서 두들겨 성형하는 것)해 만들었는데, 같은 강도의 제품을 더 빨리, 싸게 만드는 ‘사고의 전환’을 이뤄낸 것이다.
3D 프린팅은 21세기 회가내스의 ‘가마’다. 금속분말이란 본질은 지키면서 혁신을 이뤄낸 셈이다. 랄프 칼스트룀 디지털 메탈 사업부 매니저는 “작고 복잡한 부품을 자동화된 공정에서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 독일 쾰른 외곽의 작은 마을 베어멜스키르헨에서도 축적의 시간을 만날 수 있었다. 텐테라는 회사 이름은 낯설지만, 독일 명품 캐리어 리모와를 이야기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료·수술용 침대의 바퀴는 세계 시장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밀·정숙을 요하고 내구성까지 갖춰야 해 쉽게 뛰어들 수 없는 분야다.
쇼더홀름 회가내스 수석부사장은 “사업 초기 수익도 나지 않았고 시장도 작았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집념으로 사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경쟁력의 비밀은 금속분말을 만들고 배합해 구워내는 노하우를 다른 기업이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회가내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03억6000만 스웨덴크로나(약 1조3000억원). 영업이익률은 20%에 육박한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소부장’ 육성을 위해 수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돈만 써서 될 일이 아니라 오랜 데이터와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히든 챔피언 기업의 소재 포뮬러(배합 노하우)가 영업비밀이며, 수백만, 수천만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획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텐테는 지난해 매출액의 8%에 달하는 1800만 유로(약 230억원)를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라밍거 담당은 “고객사가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분석을 통해 고객사의 비밀까지 파악한다”며“이를 통해 완벽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텐테의 철학”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최준호·이동현·김영주·박민제·문희철 기자 offramp@joongang.co.kr
☞히든 챔피언=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1996년 펴낸 동명 저서에서 나온 용어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강소기업을 말한다. 지몬은 세계시장에서 1~3위 이내 제품을 가지고 있고 매출이 50억 유로(6조 5630억원) 이하이며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을 히든 챔피언으로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