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한 대형 서점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소개말이다. 책하면 떠오르는 지식·교양도 아니고 라이프스타일을 높이다니, 처음엔 전화를 잘못 걸었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서점에 가보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서점이 복합문화 공간으로 진화하면서 중독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대형 서점이 다채로운 생활문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서점들이 내걸고 있는 수식어만 봐도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컬처 리더들을 위한 복합문화 공간’ ‘책과 라이프스타일 숍이 결합한 새로운 유형의 도심 속 복합문화 공간’ ‘라이프스타일 북센터’ 등 다양하다.
동네 책방서 대형 서점으로 확산
소비자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도록 책상을 마련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는 북토크를 여는 등 서점의 바뀐 모습은 다채롭다. 교보문고는 광화문점에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방문자가 미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공간, 교보아트스페이스를 운영한다. 영업 시간이 지나고 문을 닫은 서점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심야책방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서점은 한발 더 나아가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영풍문고는 서점에서 버스킹 공연을 펼친다. 공연은 홍대점, 종각 종로본점, 광교점, 광복 롯데점 등에서 열리며 소비자가 책부터 음악까지 모두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다. 서점에서 생활 제품도 살 수 있도록 리빙 브랜드 ‘버터’를 서점 안에 숍인숍 형태로 열기도 했다. 현재 영풍문고의 여의도 IFC몰점, 분당 서현점, 광주 터미널점에 있다. 종로본점에선 수채화 그리기, 자수, 종이접기 등을 배울 수 있는 원데이 클래스(1일 강좌)가 진행되는 문화 공간 ‘책향’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대형 서점, 북파크는 매달 북콘서트를 연다. 대규모 공연장이 있어 독자 300여 명이 관객으로 참여하는 행사를 진행한다. 김용식 북파크 점장은 “과학 전문 도서를 판매하던 서점에서 복합문화 공간으로 2017년 1월 재단장해 문을 열었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다”며 “예전보다 현재 매출이 300% 넘게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서점이 대대적으로 변신하고부터 줄어들던 매장 수와 매출이 증가하고, 주변 상권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2017년까지 25개 영업점을 운영했던 교보문고는 매장을 복합문화 공간으로 바꾼 뒤 방문자 유입률이 늘면서 지금은 36개 점을 거느리고 있다. 영풍문고도 2016년부터 현재까지 24개 매장을 새롭게 열었다. 최근 문을 연 서점은 대부분 백화점·복합쇼핑몰 같은 대형 유통 매장에 들어서 상권의 분양과 흥행을 이끄는 ‘키 테넌트(key tenant, 핵심 점포·시설)’ 역할도 하고 있다.
고객 유치, 공실률 감소에 효과적
하지만 변화하는 서점 모습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책이라는 주요 콘텐트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점이 카페 또는 전시관처럼 예쁘게 꾸며져 마치 사진 촬영하기 좋은 ‘포토 스폿’으로만 생각하고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서점에서 만난 이예진(41)씨는 “조용히 책을 고르고 싶었는데 어수선한 분위기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요즘 서점은 책을 보러 오는 공간이 아닌 책이 예쁘게 놓인 공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점에 마련된 독서 공간에 책 수십 권을 쌓아두고 보지도 않으면서 온종일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해당 책을 사려고 온 사람은 오히려 책을 찾기도 보기도 어렵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