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이춘재가 군에서 전역한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살해해 수감된 1994년 1월까지 이 사건들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5건의 살인사건은 화성 일대에서 3건, 충북 청주에서 2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사건 발생 일시와 지역 등 자세한 언급을 꺼리고 있지만, 과거 언론 보도 내용 등을 보면 이춘재의 범행으로 추정되는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수원 여고생 살인, 화성 초등생 실종도?
당시 경찰도 이 사건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연장선으로 보고 수원 경찰과 화성 경찰이 공조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당시 다른 용의자를 지목하고 이 용의자가 숨지는 일이 벌어지면서 흐지부지됐다.
1989년 7월 9일에는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에서 또 다른 여고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슴과 등을 흉기로 찔렸고 알몸이었다. 7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10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1989년 7월 10일 자 중앙일보는 “시신이 발견된 지점이 3번째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화성군 정남면 관정리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관련 여부도 수사 중”이라고 썼다. 두 여고생 사건을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 지은 것이다.
과거 언론이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연관을 지었던 사건은 더 있다. 1990년 11월 17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는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희생자의 소식을 전하며 “지난해 7월 9차 희생자 이웃에 살던 국교생(초등학생) A양(당시 8세)이 실종됐으나 경찰이 이를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 수사를 끝냈다”고 보도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A양은 1989년 7월 7일 낮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6개월 뒤인 그해 12월 A양이 입고 나간 청바지와 책가방이 실종 현장 30여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경찰이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해 수사를 종결했다고 한다.
A양이 실종된 1989년 7월은 2차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다. 당시 기사에서 연합뉴스는 “지난 88년 한 해 동안 화성에서만 모두 50여건의 가출인 신고가 있었는데 절반가량이 15~30세 부녀자들이라 화성 부녀자 연쇄피살 사건(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주민들은 추측했다”고 덧붙였다.
이춘재 이사한 청주에서의 살인 사건
1992년 4월 23일 청주시 강내면 학천교 경부고속도로 학천교 확장 공사현장에서 2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알몸 상태로 양손이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이 여성이 숨진 지 3~4개월 된 것으로 보고 신원 파악에 나섰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같은 해 4월엔 청주시 봉명동에서 30대 술집 여종업원이, 6월엔 복대동에서 20대 가정주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건도 미제로 남았다. 1991년 청주시 남주동에서 발생한 부녀자 피살 사건도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있다.
이춘재가 처제를 살해하기 한달여 전인 1993년 11월 30일 청주시 내덕동 셋방에 30대로 추정되는 괴한이 침입해 잠을 자던 1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둔기로 때려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이듬해 1월 30대 피의자가 검거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본부는 지난달 말 청주 흥덕경찰서와 청원경찰서 문서고에서 10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1991년 4월과 이씨가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검거된 1994년 1월까지의 사건 기록을 확인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언론 보도 등을 보면 몇건의 유사 사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와의 연관성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30여건의 성범죄도 모두 화성·수원·청주?
용의자는 화성 살인사건처럼 피해자들을 그들이 착용한 속옷이나 스타킹 등으로 결박했다. 피해자들이 진술한 용의자의 생김새도 170㎝ 내외의 키에 보통 체격 등 화성 살인사건 용의자와 같았다. 당시 화성지역에선 성범죄를 당한 여성이 신고 등을 꺼리는 점 등으로 미뤄 “성폭력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경찰은 화성과 인접한 수원, 오산, 평택 등과 이춘재가 살았던 청주지역 성폭행 사건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재는 1989년 9월 수원시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강도예비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1990년 4월 석방됐다. 이춘재는 경찰에 붙잡혔을 당시 “모르는 사람에게 구타를 당해 쫓아가던 중 피해자의 집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성범죄를 시도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모란·최종권·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