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보수 성향의 주최 측은 “30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진보 진영의 검찰청 앞 서초동집회 이후 5일 만에 벌어진 정반대 광경이다. 2017년 탄핵 정국에서 촛불과 태극기로 뚜렷이 양분됐던 대한민국이 2년 반 만에 광화문 대 서초동이라는 ‘거리 정치’로 갈리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까지 가세한 세(勢) 대결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진보 전유물 ‘광장’에 보수 집결
숫자 밀리면 권력 뺏긴다 학습효과
“정치권 스스로 조정기능 팽개쳐
극단과 혐오 풀 첫 단추는 대통령”
하지만 ‘사법적폐 청산 범국민 시민연대’가 주도한 28일 서초동집회에 “검찰 개혁” “조국 수호” 등을 외치며 진보 진영이 집결하자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특히 “참석 인원이 200만 명”(이재정 대변인)이라거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의 사람이 모였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청와대 관계자), “촛불 시즌2가 시작됐다”며 여권이 분위기에 올라타자 한국당도 광화문집회에 ‘올인’했다.
각 지역 현역 의원 및 당협위원장, 시·도당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지역별로 100~400명의 인원 동원 가이드라인까지 내렸다. 황교안 대표가 2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내일 집회에 많은 국민의 참여를 바란다”고 독려하기도 했다.
이젠 여권이 5일 서초동집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공식 조직에선 부인하지만 말단에선 참여 독려 움직임이 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5일에 더 모여야 한다”는 얘기가 돈다. 진영 간 동원 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대의민주주의의 결정체인 국회가 이렇듯 광장의 정치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 같은 ‘의회정치 무력, 거리정치 득세’의 기류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하며 직접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하면서 예견됐던 부작용 혹은 역풍이다”(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진단이 나온다.
문제는 현 시국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우려다. 『문명의 충돌』의 저자인 고(故)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를 ‘참여 폭발의 위기’라며 “사회 전반에 참여 욕구가 팽배한 데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능력이 떨어지면 국가는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시민사회의 갈등이 심화해도 최종적으로 정치를 통해 합의나 타협을 하는 게 민주주의 정치의 요체”라며 “지금은 외려 정치권이 스스로 조정 기능을 내팽개친 채 시민세력에 기대려 한다”고 꼬집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 정부가 적폐 청산 기조에서 한국당 등과의 공존 가능성 자체를 부정해 온 게 사실”이라며 “극단과 혐오의 정치를 풀 수 있는 첫 단추는 결국 대통령의 몫”이라고 전했다.
최민우·유성운 기자 minw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