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덩샤오핑이 선례를 만든 ‘서우장 하오(首長好, 대장님 안녕하십니까)’ 구호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10시 44분, 즈(直)-8 헬기 편대가 대형 당기→국기→군기를, 우즈(武直)-10 편대가 ‘70’자 대형을 그리며 천안문 상공을 비행했다. 분열이 시작됐다.
지상에선 창설 92년을 맞은 인민해방군 삼군의장대가 역시 당기→국기→군기 순서로 천안문을 지났다. 이어 일선부대의 지휘관으로 구성된 지휘부대, 육군보병부대, 해군수병부대 순으로 15개 도보부대가 시 주석이 자리한 천안문 앞을 거총 자세로 지났다.
관심은 32개 육·해·공 장비 부대의 분열에 쏟아졌다. 이 중 주인공은 단연 중국의 ‘전략핵 4형제’였다. “대국의 장검(長劍), 호탕한 동풍(東風)”이란 설명과 함께 초음속 추진기를 장착한 둥펑(東風)-17 4대가 4열 종대로 사열대를 지났다.
마침내 세계의 주목을 받는 ‘전략핵 4형제’가 사열대 앞으로 들어섰다. 둥펑-31AG, 둥펑-5B, 둥펑-41까지 이날 등장한 둥펑 계열 미사일만 총 112발이었다. “누구도 중국을 막을 수 없다”는 시 주석의 연설을 뒷받침하는 힘으로 보였다.
중국은 이들 ‘전략핵 4형제’를 통해 2차 핵보복에 빈틈이 없음을 과시했다. 2015년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열병식에서 선보였던 둥펑 계열 7종류에 비해 양과 질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분명히 했다.
무인기 부대도 총 4개 제대가 스텔스 드론 리젠(利劍)과 정찰 드론 우전(無偵)-6을 앞세워 다양한 드론 포트폴리오를 선보였다. 해저 정보수집과 대잠수함 작전에 투입할 무인 잠수정이 HSU-001 표식을 붙이고 등장했다.
이어진 항공부대 사열은 딩라이항(丁來杭·62) 공군 사령관이 직접 조종간을 잡은 조기경보기 쿵징(空警)-2000의 비행으로 시작됐다. 70년전 혹시 있을 지 모를 국민당의 폭격을 우려해 완전히 무장한 채 천안문 상공을 두 차례 선회했던 공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차세대 스텔스 전략 폭격기 훙(轟)-20은 선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난달 러시아 공군과 함께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던 훙-6N이 나타나 전략 공군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어진 군중 행진에선 10만명 차량 70대, 36개 팀이 동원됐다. “건국 창업”, “개혁개방”, “위대한 부흥”의 세 파트로 구성됐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의 대형 초상화와 각 지도자의 집정 이념을 강조한 매스 게임이 펼쳐졌다.
휴대폰 제조사 샤오미(小米)의 레이쥔(雷軍) 회장이 장식 차량에 올랐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도 행진에 참여했다. 2시간 40분 이어진 경축 행사는 ‘조국만세’ 차량이 천안문 앞에 자리하자 7만 마리의 비둘기와 7만 개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 오르며 끝을 맺었다.
이날 열병식을 위해 베이징에 한 달간 펼쳐졌던 계엄급 통제도 절정을 이뤘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열병식 취재를 위해 1000여명의 외국 기자들은 새벽 4시 30분 ‘21세기단’ 주차장에 모여 보안검색을 받았다.
공항 검색을 능가하는 X선 검색과 신체 검색이 이어졌고, 천안문 현장에 도착한 뒤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는 조용이 하라는 진행 요원의 요구가 계속될 정도로 삼엄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