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열린 제104회 예장 통합 교단 정기총회에서 전권수습위원회는 명성교회 수습안을 의결했다. 수습안엔 명성교회 설립자 김삼환(74) 원로목사의 아들 김하나(46) 위임목사가 2021년 1월 1일 이후부터 담임목사직을 맡을 수 있게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예장 통합교단 총회 수습안 의결
2021년부터 김하나 담임목사 가능
지난 8월 재판국 재심선 ‘헌법 위반’
“교계 전반 세습 관행 부추겨” 우려
김삼환 원로목사가 1980년 세운 명성교회는 등록 교인만 10만명에 달하는 초대형 교회다. 1년 예산만 37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인 수와 재정 규모 양면에서 막강한 힘을 보유한 교회다.
문제는 원로목사가 2015년 12월 정년퇴임을 하며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면서 불거졌다. 2017년 예장 통합 총회 재판국이 그의 아들 김하나 목사의 담임목사직 청빙이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 명성교회 부자세습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졌다.
앞서 2013년 제정된 예장총회 헌법에는 “해당 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 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 해당교회의 시무장로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위임목사 또는 담임목사가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 사안은 결국 총회 재판국 재심까지 올라가 지난 8월 6일 ‘명성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이 교단 헌법상 세습금지 조항을 위반해 무효’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총회에서 재판국 판결과 배치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 명성교회 수습방안은 출석 총대(총회대의원) 1204명 가운데 920명이 거수로 찬성해 통과됐다. 이번 총회엔 헌법위원회 안건으로 ‘(담임)목사나 장로가 은퇴하고 5년이 지난 뒤부터는 배우자나 직계비속을 위임(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있게 허용하는 교단 헌법시행규정을 신설하자’는 청원이 올라와 있다. 총회는 이 안건을 폭넓게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은퇴 5년 후 직계비속의 청빙이 가능’한 시행령을 통해 명성교회의 세습의 길을 열어준 셈이다. 시행령을 당장 손댄 것도 아니지만, 사실상 5년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두고 부자세습을 승인한 것이다. 교회 세습이 ‘은퇴 2년 뒤’는 불가해도 ‘은퇴 5년 뒤’는 허용될 수 있다는, 법리와 원칙에서 벗어난 예외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날 명성교회 세습을 허용한 예장 교단 총회의 결정에 대해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는 “이는 교단이 명성교회를 잃으면 큰 손해가 될 것으로 계산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신학적이고 성서에 근거를 둔 판단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계산에 따라 내린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교단에서 명성교회를 잃지 않기 위해 부린 꼼수라는 해석이다.
이 교수는 “흔히 교회에선 담임목사가 은퇴하면 다른 사람을 내세웠다가 아들을 임명하는 일이 거듭 반복돼왔다”면서 “교단의 이번 수습안은 결국 교회에 만연한 부자세습을 합법화한 것이다. 이는 교회가 자정 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며 결국 자멸하는 길을 택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불과 7주 전에 교단 재판국이 교회 헌법상 세습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결한 것을 총회에서 다시 뒤집은 것은 건전한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법리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교단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교계 시민단체인 평화나무의 신기정 사무총장은 “이번 수습안은 법리적으로 보면 총회가 교단의 헌법을 전면 부정하고 지나치게 편의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한 교회를 넘어 사회 문제”라며 “교계 전반의 세습 관행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고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