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전환'이 새 키워드?···청와대 과잉해석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19.09.26 15:16

수정 2019.09.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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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이후 북ㆍ미 관계의 ‘전환(transform)’이 키워드로 부각됐다. 이는 관계 개선(improve)을 넘어선 적극적ㆍ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는 청와대의 해석이 덧붙여지면서다.

청와대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 영문본. transform(전환)이라는 표현을 썼다. [청와대 영문 홈페이지 캡쳐]

청와대는 한ㆍ미 정상회담 직후 고민정 대변인 브리핑에서 전환이라는 단어를 썼다. “두 정상은 한ㆍ미 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전환’해 70년 가까이 지속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할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했다.

정작 백악관 발표엔 왜 없나?

하지만 한ㆍ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백악관 보도자료에는 전환을 뜻하는 ‘transform’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김 위원장이 역사적인 싱가포르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했던 약속을 달성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고 돼 있다. 주어도 ‘두 정상’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다.  

백악관의 한미정상회담 결과 보도자료. 북핵 관련 논의를 소개했으나 transform(전환)이란 단어는 없다. [백악관 풀 리포트 웹사이트 캡쳐]

다만 통상 외교 협의 결과를 발표할 때는 상대방과 문안 협의를 거친다. 특히 이견이 있는 내용은 ‘양 측’을 주어로 발표하지 않는다. 백악관도 청와대가 전환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반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처럼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내용이고, 양 측이 합의도 했다면 미국이 굳이 이 표현을 보도자료에서 뺄 이유도 없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백악관 보도자료에서 ‘두 정상’을 주어로 하는 내용은 “그들은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향후 긴밀한 소통을 계속하겠다고 확인했다” 두 문장이 전부다.

새로운 개념의 등장 맞나?

청와대는 전환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새로운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북ㆍ미 간 비핵화 협상 재개를 앞두고 미국의 획기적 입장 변화로 해석하는 이유다.

지난 6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미 확대 정상회담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사실 이는 처음 나온 개념이 아니다. 지난 1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 연설문을 보면 ‘transform’(전환하다) 혹은 ‘transformation’(전환)이라는 단어를 일곱 번 썼다. 하노이 노 딜이 있기도 전에 한 연설이다.  
비건 대표는 “북·미 정상은 -만약 성공한다면-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들을 통해 톱다운 방식을 추구하기로 했다” “우리는 관계를 ‘전환’한다는, 즉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체제를 세운다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목적과 비핵화 완료에서 동시에 진전을 보기 위한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 등으로 표현했다.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한 센토사 선언 1항(새로운 북ㆍ미 관계 수립)과 2항(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이행이라는 의미로 전환을 쓴 셈이다.  

트럼프의 새로운 방법에 포함?

청와대가 의미를 부여한 전환이 이를 넘어선 새로운 의미인지는 확실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제안한 ‘새로운 방법’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청와대는 북한이 요구한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표현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법에 대해 구체적 설명은 하지 않고 있다. 한ㆍ미 정상회담에서도 관련 언급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털 바클레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전환에 대한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적대 관계의 종식이라는 기존의 일반적인 목표 제시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에서 어떤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인지 설명하는 당국자는 한국과 미국 어느 쪽에도 없다.  

“너무 의미 부여해 기대감 키워”

이에 전환이라는 표현을 미국은 ‘일반명사’로 썼는데, 청와대가 ‘고유명사’처럼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과잉 해석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그간의 맥락을 보면 비핵화에서 진전이 있으면 북ㆍ미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담은 메시지이지, 미국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보이진 않는다. 설령 이게 관계 개선에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 ‘α’까지 더한 개념이라고 해도 긍정적 의지 표명의 첫발을 뗐을 뿐 향후 지난한 비핵화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마치 엄청난 진전이 있는 것처럼 너무 의미를 부여해 기대감을 키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