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핵융합실험로 부품 공급
1억도·영하 269도 온도차 차단
플라즈마 담는 진공용기 제작도
국내 중소·대기업 224개사 참여
허남일 ITER한국사업단 토카막 기술부장은 “ITER 열차폐체는 한국이 상세설계부터 제작까지 100% 책임지고 있는 조달품”이라며 “국제핵융합실험로 부품은 처음 만들어보는 것이긴 하지만, ITER보다 규모가 작지만 유사한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인 K-STAR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진북면 삼홍기계에서 동쪽으로 30㎞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이엠코리아도 ‘태양의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다. 핵융합실험로 진공용기 안에서 플라즈마와 직접 접촉하는 차폐블록 제작을 맡고 있다. 이엠코리아 공장에서 만난 차폐블록은 하나가 가로·세로 1.4×1.1m의 크기에 무게 2.5t에 달하는 특수 스테인레스스틸 덩어리다. 차폐블록이 없으면 진공용기는 뜨거운 플라즈마의 온도를 견뎌낼 수 없다. 차폐블록 안에는 냉각수가 지나가는 수많은 관이 마치 혈관처럼 뻗어있다. 창원 현장에서 만난 EM코리아는 초정밀 공작기계를 이용해 스테인레스스틸 덩어리를 오차범위 2㎜ 미만으로 깎아내고 있었다. EM코리아는 2022년 9월까지 이런 차폐블록 90개를 제작·공급해야 한다.
강삼수 이엠코리아 대표는 “첫 차폐블록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만 4개월이 걸렸지만 양산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구축되면 매달 3개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며“정밀한 나선형 강선이 들어있는 전차·자주포의 포신을 만들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폐블록을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기정 ITER한국사업단 단장은“ITER부품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7개국들이 지분비율에 비례해 나눠 공급하고 있다”며“우리나라 조달품목 9개는 국내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는데 실제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1·2차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기업이 총 224개사에 달한다”고 말했다.
자본력도 경험도 부족한 한국 중소기업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국제핵융합실험로 부품을 제대로 만들수 있을까. 혹여나 부품을 공급해 프랑스에서 조립한 뒤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이에 대해 정 단장은 “자칫 잘못 만들어지면 그런 상황도 벌어질 수 있지만 가혹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도록 부품에 대한 엄격한 품질 기준을 세워두고 있다”면서도 “ITER 본부에서 한국 등 부품 제작기업들을 수시로 찾아 품질 준수여부를 확인하고 있는데다 참여 산업체들이 모두 품질 준수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고 말했다.
인공태양을 만들기 위한 국제협력 프로그램 ITER는 한때 계획 추진이 늦어지면서 ‘엉터리 사기 프로젝트’라는 비난까지 받았으나, 2015년부터 정상궤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공사 진척률이 64%에 달하고 있으며, 연말까지는 68%에 도달할 예정이다. ITER는 2025년까지 공사를 완료하고, 이후에는 플라즈마 실험에 들어간다.
ITER 프로젝트는 미국과 러시아·유럽(EU)·일본·중국·한국·인도 7개국이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의 역할이 막중하다.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 개발 주역인 이경수 박사가 2015년부터 ITER 제작을 총괄하는 기술담당 사무차장을 맡아 공사를 이끌어가고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부소장을 지낸 오영국 책임연구원도 지난해 7월 프랑스 ITER로 파견돼 현지 장치운영부장을 맡고 있다. 오 부장은 ITER 장치 운전을 위한 프레임워크 개발 및 유지 전략·절차 정의를 비롯해 통합시운전 및 최초 플라즈마 실험에 대한 상세계획 준비를 총괄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 ITER 건설현장에는 한국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파견된 공학자 28명을 비롯 총 56명의 한국인이 활동하고 있다. K-STAR는 ITER와 같은 초전도 토카막식 핵융합 시설이다. 크기는 ITER의 3분의1 이지만, 구조와 원리는 ITER와 사실상 같다. K-STAR가 핵융합을 통해 초고온의 플라즈마까지 발생시키는 장치라면, ITER는 플라즈마를 이용해 발전에 필요한 열에너지까지 만들어내는 시설이다.
이경수 ITER 사무차장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인 2007년 완공된 K-STAR 개발 노하우가 ITER 건설에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라며 “이후로도 K스타가 현재 실험하고 있는 초고온 플라즈마 발생 및 안정적 유지 운영 노하우가 ITER로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