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는 1969년 수류탄 사고를 일으킨 뒤 사망한 정 일병에 대해선 가해자라는 기존 판단을 뒤집었다. 당시 군 수사 결과는 “정 일병이 선임병 2명이 근무하고 있던 초소에 찾아가 호기심으로 수류탄을 만지다 폭발해 사망했고, 함께 있던 선임병들은 이 실수로 큰 부상을 입게 됐다”고 나왔지만 위원회는 “정 일병이 수류탄 폭발 사고의 제공자가 아닌 피해자였다”고 발표했다. 군 수사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망인을 가해자라고 단정 지었다는 것이다. 위원회 측은 “동료 장병들의 진술, 상처 부위 등 관련 자료의 분석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한 결과 수류탄 폭발은 정 일병 책임이 아닌 불상의 원인에 의한 것”이라며 “정 일병은 50년 이상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됐고, 이로 인해 가족들도 큰 상처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군대 내 부조리로 사망한 장병들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이 이뤄졌다. 1985년 군복무 중 사망한 김 일병의 경우 당시 군 당국에 의해 자해사망한 것으로 처리됐지만 위원회는 “선임병에 의한 지속적인 구타, 구타로 인한 상처감염, 구타한 선임병과 격리해야한다는 군의관의 조언 무시가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같은 해 자해사망으로 처리된 김 병장 역시 당시 불우한 가정환경, 초소 근무에 따른 군 복무 염증이 자살 이유로 꼽혔지만, 위원회 조사에서 선임하사의 지속적이고 심한 구타 및 폭언,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위원회는 진상 규명에 성공한 13건 사망자 중 박 소위에 대해선 ‘전사’로, 정 일병 등 다른 사망자에 대해선 ‘순직’으로 각각 재심사할 것을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 요청했다. 위원회는 조사를 거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국방부에 재심사 등을 요구할 수 있으며, 국방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 위원회 관계자는 “출범 이후 1년간 접수된 703건의 진상규명 신청 중 619건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나머지 71건은 각하·취하 등으로 종결됐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