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대책이요? 섹시하게"알맹이 빈곤으로 망신당한 日정계 프린스

중앙일보

입력 2019.09.24 11:40

수정 2019.09.2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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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동과 같은 빅 이슈를 대할 때에는 즐겁고(fun), 쿨하고(cool), 섹시(sexy)하게 해야 한다."
 
22일(현지시간)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변화 대책 관련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환경상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38)가 한 얘기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전 총리의 차남으로, ‘차기 총리 후보’여론조사 1위를 휩쓰는 일본 정계의 ‘프린스’이자 ’아이돌’이다.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유엔 회의 발언 논란
석탄연료 저감 대책 질문엔 "줄이겠다" 반복
스포트라이트 뜨겁지만 콘텐트 부족 드러내
평소부터 '그럴싸하지만 당연한'화법 유명
인터넷선 "연말이면 곧 새해온다"등 비야냥

고이즈미의 회견 발언 중 ‘섹시’라는 표현은 회견에 동석한 다른 이의 발언을 인용한 표현이라고 하지만, 일본내에선 "기후변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대하는 표현으로는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11일 발표된 개각에서 환경상에 취임한 고이즈미는 뉴욕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기자회견에 앞서 열린 기후변동 관련 행사에선 3분간 연설도 했다. "내가 일본의 환경상이 된 건 불과 10일전이다"라는 농담으로 시작된 원고 없는 영어 연설이었다. 
뉴욕 컬럼비아대 유학 경험을 살린 것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만만치 않았다. 
  
‘화석 연료 감소를 위해 어떻게 노력하실 것이냐’는 질문에는 “줄이겠다”고 했지만, ‘어떻게(HOW)~’라는 질문엔 아예 대답을 못했다.  
 
그 뒤엔 “환경성의 입장이 아니라 정부 전체의 입장에서 밝히지만, 우리는 이걸 줄이겠다”고 했다. 
 
끝내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다가 문제가 된 ‘섹시’발언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일본 민영방송 TV아사히의 메인 뉴스 ‘보도 스테이션’ 사회자는 “비록 같은 회견에 출석한 다른 이의 말을 인용했다고는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위기의식이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환경상이 ‘섹시’라는 표현을 썼다”고 비꼬았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 [AP=연합뉴스]

'보도 스테이션'의 해설자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後藤謙次)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슬쩍 덮으려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더 진지하게 한발 더 들어간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며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신용을 잃을 수 있다.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친인 고이즈미 전 총리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열정적인 연설로 유명했다. 
 
고이즈미도 아버지 못지않은 열정적인 연설로 유명하지만 그의 화법에 대해선  “뻔하고 당연한 얘기를 빙빙 둘러서 어렵게 하고,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환경상 취임 직후인 지난 17일 후쿠시마현 방문 때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고이즈미는 ‘30년내에 원전사고로 인한 오염토의 최종처분장을 후쿠시마현 밖에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약속과 관련된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고이즈미는 "30년후면 나는 몇 살일까 지진 직후부터 생각해왔다. 아마 (내가)건강하다면 (후쿠시마 현민들과의)그 30년후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닐지, 그것을 말씀드릴 수 있는 정치가라고 생각한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그의 화법은 환경상이 되기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화제였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인터넷상에서 ‘신지로가 할 것 같은 말’을 입력하면 ‘당연하면서도 장황한’ 표현들이 여럿 등장한다고 한다.  
 
“빨간색 기를 올리고,흰색 기를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빨간색과 흰색이 모두 올라가 있다”,"연말연시, 세모, 섣달…이런 표현을 들으면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한다. 곧 신년이구나","여러분, 저는 여러분들께 12시의 7시간 뒤는 '7시'이면서 '19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진지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등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