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 논문은 의학 논문의 저자 윤리(authorship) 불감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의학 논문의 저자 부풀리기나 물타기 같은 문제점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성태 서울대 의대 교수(대한의학회 간행이사)가 20일 국내 주요 의학 학술지인 JKMS(대한의학회지)와 YMJ(연세의학저널)에 지난해 실린 논문의 저자 실태를 분석했더니 단일기관 논문 저자가 각각 평균 5.9명, 6.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병원이나 의대에서 제출한 연구 논문에 저자가 6명가량 올라간다는 의미다. 저명한 미국 의학지인 JAMA(미국의사협회저널) 단일기관 논문의 평균 저자 2.2명(2015년 기준)의 약 3배에 달한다. 다른 외국 학술지의 저자 수도 JAMA와 큰 차이가 없다.
연구 윤리 전문가 "논문 품앗이 관행 여전"
국내 단일기관 논문 저자, 미국 3배 가까워
같은 병원, 의대에서 공동저자 10여명 흔해
기여 없는 지도교수 등 집어넣는 문제 여전
연구자 설문해보니 부정행위 본 비율 66%
저자 윤리는 자율성 영역 "원칙만 지켜도…"
눈에 보이는 저자 수만큼 잘 드러나지 않는 저자의 ‘질’도 문제다. 특히 아무 기여 없는 지도교수 등을 저자에 자동으로 올리는 ‘명예 저자’ 문제가 크다. 예를 들어 모 국립대 의대 분과 교수가 그 분과에서 나온 논문에 다 저자로 들어가는 식이다. 홍 교수는 “실제 연구에선 조씨가 문제가 됐던 제1저자보다 논문을 책임질 책임저자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시니어라는 이유로 이름만 올리고 역할을 하지 않는 책임저자들이 있다”면서 “일부 교수는 자기 진료 환자를 제자가 분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자 등재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했지만 저자 등재 과정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논문 취소 전문 매체 ‘리트랙션 워치’에 따르면 최근 10년치 한국인 의학 논문 중 세브란스병원에서 나온 논문(2016년 취소)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했다. 논문 내용엔 문제가 없었지만 한 연구자가 저자 목록에서 빠졌다고 학술지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논문 취소로 이어졌다. 이 논문의 책임저자는 “해당 연구자가 논문에 참여했지만 심각한 연구 윤리 위반을 저질렀기 때문에 저자에 포함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철회 요청을 하고 논문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2008년엔 논문 책임저자를 본인으로 몰래 바꾸고 해외 학술지에 게재한 의사가 원 저자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의료계만 포함된 건 아니지만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4월 공개한 ‘대학 교원의 연구윤리 인식수준 조사에 관한 연구’(2186명 설문)에서도 이런 경향이 잘 드러난다. 대학 교원들이 생각하는 연구 윤리 부적절 행위 1위는 ‘부당 저자 표시’(51.1%)였다. 구체적으로는 선후배 간 논문 밀어주기나 책임저자 남용, 공저자 부풀리기, 실험실 구성원 간 갈등 등이 꼽혔다.
생물학ㆍ의학 연구자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2015년 1164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최근 3년간 참여한 논문에서 '저자됨' 관련 연구 부정행위를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 있다는 응답자가 3명 중 2명(66%)에 달했다. 유형별로는 '저자 끼워 넣기'가 83%로 최다였고 '저자 순서 바꾸기'(52%), '저자 누락'(30%)이 뒤를 이었다.
2007년 제정된 교육부 지침에선 연구에 기여하지 않았는데 저자가 되거나 그 반대인 경우, 지도교수가 학생 학위 논문을 본인 명의로 발표하는 행위 등이 모두 연구 부정에 해당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논문 발표 시 연구자 소속ㆍ직위 등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명시한다. 홍 교수는 "국내 연구자들이 글로벌 스탠다드만 따라도 현재 나오는 저자 윤리 문제들이 대폭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