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SBS ‘런닝맨’은 방송 9주년 기념 팬미팅 ‘런닝구 프로젝트’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대대적으로 열었다. 유재석ㆍ지석진ㆍ하하ㆍ김종국ㆍ이광수ㆍ송지효ㆍ전소민ㆍ양세찬 등 멤버 여덟 명 전원과 거미ㆍ소란ㆍ에이핑크ㆍ코드 쿤스트ㆍ넉살 등이 2500여 명 관중 앞에서 대형 쇼 무대를 펼쳤다. 팬미팅 실황은 지난 8일부터 매주 일요일 ‘런닝맨’ 시간에 방송되고 있다. ‘런닝맨’ 정철민 PD는 “10주년에 하면 멋있긴 했겠지만 앞으로 어찌될 지 몰라서…”라며 9주년에 기념 행사를 크게 벌인 이유를 설명했다. 1년 뒤 방송의 존속 여부마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 ‘런닝맨’을 비롯한 각 방송사의 장수 예능 프로그램들이 맞닥뜨린 현실이다.
버라이어티와 토크쇼의 시대가 저물며 ‘해피투게더’ ‘안녕하세요’(이상 KBS2), ‘라디오스타’(MBC) 등 각 방송사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하락에 고심하고 있다. 한때 20, 30%에 육박했던 시청률이 최근엔 2∼6%대에 머무르는 양상이다.
‘해피투게더’ ‘라디오스타’ 등 장수 예능 위기
시청률 2∼6%대…젊은 시청층 TV 이탈도 영향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예전에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뒷얘기와 재치있는 농담 등을 접하기 위해 TV 토크쇼를 보는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이젠 인터넷 등에 온갖 얘깃거리와 정보가 넘치는 상황이라 토크쇼에서 재미를 느끼기 힘들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런닝맨’ 같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입지도 위태롭다. 출연진들에게 미션을 주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을 담아내며 한때 대표 예능의 위세를 누렸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무한도전’(MBC), ‘패밀리가 떴다’(SBS) 등이 모두 종영한 상황이다. 대신 대세가 된 예능 장르는 ‘미운 우리 새끼’(SBS), ‘전지적 참견시점’ ‘나혼자 산다’(이상 MBC), ‘삼시세끼’(tvN) 등 관찰 예능.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제 연예인이 방송 프로그램의 캐릭터로 기능하며 재미를 주는 시대는 지나갔다. 시청자들은 TV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영미 평론가 역시 “연예인들과 이웃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이 커졌다”며 관찰 예능의 인기 이면을 짚었다.
제작진의 고민도 크다. ‘런닝맨’ 정철민 PD는 “방송사들이 TV 주 시청층인 40대 이상이 좋아하는 프로그램만 많이 만들고 있다”면서 “중장년층의 시대가 자꾸 소환되면서 이들이 과거 열광했던 ‘옛날 스타’들의 출연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건모를 앞세웠던 관찰 예능 ‘미운 우리 새끼’나 허재ㆍ이만기ㆍ이봉주 등 옛 스포츠 영웅들이 출연하는 ‘뭉쳐야 찬다’(JTBC) 등이 그 사례다. 정 PD의 고민은 계속됐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신인이 설 무대가 없어진다. 버라이어티는 끝까지 존재해서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자신의 끼를 펼칠 수 있는 장이 돼야 한다. 스타가 발굴되지 못하면 TV 예능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