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서점을 딸에게 맡기고 수안보로 내려갔다. 남편과 오랜만에 둘만의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남편의 주벽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작품이 잘 안 풀리면 상황이 더 심각했다. 아침에 “잠깐 30분만 있다 올게”하고 나간 남편은 밤 9시에야 택시기사에 업혀 돌아왔다. 아내는 산속 외딴집에서 혼자 지내야 했다. 불경 『금강경』이 유일한 친구였다. 일독(一讀)에 40분 걸렸다. 칠독(七讀)을 하고 나면 하루해가 지곤 했다.
자유인 남편이 남긴 그림
순수·동심의 무차별 세상
생계 책임진 예술가 아내
열심히 살되 집착 끊어야
그의 실제 삶도 그랬다. 격식과 계산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돈 문제에 어두운 것은 물론이다. 술·담배 빼고는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 시간·장소를 가리지 않고 술을 즐겼기에 종종 실수도 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아내는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해도 새벽에 눈을 뜨면 그 즉시 자리를 걷어찼다. 새벽 2시나 3시, 눈을 뜨자마자 화구를 챙겨 들었다. 눈 뜨고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
자유인 장욱진은 ‘0점 남편’이었다. 살림은 100%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는 늘 집에서 도망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불쌍해 보였다. “갱년기니 뭐니 하나도 모르고 살았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고 돌아봤다. 남편을 저 세상에 보낸 다음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궁핍한 생활이 싫어서 (생활) 일선에 튀어 나갔어. 남편 때문이 아니야. 진짜 남편을 위했다면 술 마실 때 같이 마시고, 같이 굶었어야 했는데….” 대단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이순경 여사가 이달 초 100세 생일을 맞았다. 남편과 아내, 양가 가족 70여 명이 모여 작은 잔치를 열었다. 단행본 『진진묘』도 앞서 출간됐다. 희생과 인내의 아내·어머니상이 펼쳐진다. 20세기 한국 여성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남녀가 따로 없는 요즘 세상에 ‘딴 나라 얘기’ 같은 대목도 많지만 믿음과 신뢰의 부부·가족관계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난 한 달여 우리를 지치게 한 ‘조국 사태’ 때문일까. 거짓과 위선이 없는 글과 그림이 해독제처럼 느껴진다. 집착과 차별, 편가르기를 꾸짖는 『금강경』 소리도 들릴 듯하다. 이 여사가 자녀들에게 남긴 당부는 이렇다. “아버지가 평소 집착하지 말라, 모든 걸 떨어버리고 살자고 하셨다. 내가 백 년을 살았지. 늘 기도해라, 그 길밖에 없지….”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