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을 지켜본 자유한국당 관계자의 회고다.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받던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6년 추석 전까지만 해도 팽팽한 접전 중이었다.
여론조사회사 리얼미터가 2006년 추석 직전 실시한 9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5.4%로 1위를 차지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5.2%로 불과 0.2%포인트 차이로 그 뒤를 달렸다.
그런데 추석 직후 다른 세상이 됐다. 리얼미터의 10월 2주 여론조사에 이 전 대통령은 34.1%를 얻어 박 전 대통령(22.6%)을 크게 앞섰다. 한국당 관계자는 “서울과 지방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청계천 복원이나 버스 환승제 등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퍼졌고, 10월 9일 북한의 1차 핵실험이 벌어지면서 강력한 리더십을 기대하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회고했다. 그해 추석 이후 양측의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추석 밥상 민심이 여론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정치권의 오래된 속설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이 이에 들이는 공은 각별하다. 최근만 해도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조국 이슈를 추석 밥상머리에 올려놓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속설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 간다는 반론이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예전만큼 추석민심이 여론의 방향타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2016년 추석 전후에 리얼미터가 조사한 대선 후보 선호도를 보면 큰 변화가 없었다.
당시 수위를 달리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9월 1주와 3주에 각각 21.1%와 23.4%를 기록했고, 2위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기간에 17.3%와 17.6%였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차이를 벌렸던 2006년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갤럽이 2013년 추석을 사이에 두고 9월 2주와 9월 4주에 조사한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67%에서 60%로 뚝 떨어졌다. 기초연금안 등 복지 공약 후퇴가 논란이 되면서 추석 민심에 불을 질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반면 지난해 추석 전후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9월 3주와 10월 1주에 61%에서 64%로 오차범위 이내였다.
전문가들은 추석 밥상의 영향력 감소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①밥상머리 민심보다는 SNS=과거엔 전국 각지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다 모이면서 추석 밥상이 여론 형성의 장(場)이 됐다. 이른바 ‘장터 효과’다. 반면 지금은 SNS로 실시간 여론 형성 효과가 더 커지면서 이러한 기능이 거의 사라졌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2012년까지는 추석 밥상에서 지역-세대-직역의 여론이 뒤섞이면서 민심의 용광로이자 장터가 됐고, 선거나 정치권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며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결합하고 있다. 오히려 포털사이트의 ‘실검대결’ 처럼 SNS를 통한 결속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다만 민생이나 경제 이슈에 대한 영향력은 아직 유의미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배 소장은 “명절에 일단 모이면 정치 얘기보다 ‘먹고 사는 얘기’가 대부분”이라며 “민생-경제의 대안을 내세우면 (각 당이)차별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