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실력 구분해야…노력 없으면 죽은 인생이죠”

중앙일보

입력 2019.09.1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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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세계 무대에 데뷔한 피아니스트 백혜선. 12월 서울에서 기념 독주회를 연다. 베토벤 소나타 28번 등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9년 11월. 뉴욕 링컨센터 앨리스 털리홀에 24세의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올랐다. 그의 첫 정식 데뷔 무대였다. 그날 객석에는 한국에서 온 백혜선의 아버지가 있었다.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버지는 공연이 끝난 뒤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버드대 다니는 남자 만나 결혼하라고 보스턴으로 유학 보내놨더니 공연까지 하느냐. 이제 피아노랑 결혼한 거로 알아야겠구나.”
 
그의 아버지는 3개월 후 돌아가셨다. 백혜선은 날개 단 듯 국제무대를 누볐다. 리즈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입상하고 1994년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위 없는 3위에 올랐다. 흐트러지거나 힘 빠지지 않는 건강한 타건을 트레이드마크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같은 해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

데뷔 30주년 피아니스트 백혜선
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울며 연습
2005년 서울대 교수 사직 미국행
“위기 때마다 나를 일으킨 건 연습”
12월 독주회서 베토벤 소나타 연주

그러나 2005년 그는 서울대에 사직서를 내고 ‘연주자로 다시 서겠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현재 미국에 머무는 백혜선은 지난 30년을 두고 “최정점에 올랐다가 부서지고 다시 올라가곤 했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그때마다 연습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7년의 피아니스트 백혜선. [중앙포토]

당신에게 파워풀하다, 강렬하다는 수사가 늘 따라다녔는데 지금은 강한 연주자로만 부각되지는 않는다.
“2005년 미국으로 다시 가기 전 가끔 이런 말을 들었다. ‘연애해봤어? 네 음악에는 애절함이 모자라.’ 나중에 돌아보니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내가 당시엔 조화롭게만 잘 쳤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조화가 깨지는 경험을 했나.
“서울대 그만두고 미국으로 다시 가기 전까지 나는 안 가진 게 없는 여자였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에, 교수인 남편에 아들딸도 잘 낳았고, 부모님 잘 만나서 금전적 어려움도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다시 갔을 때 나는 완전히 애송이였고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그때 마침 혼자 살기로 했고 어머니는 이혼까지 한 딸이니까 쳐다보지도 않았다. 애들도 혼자 키워야 했고…. ”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연습으로 버텼다. 1994년에 차이콥스키 콩쿠르 나갔을 때 하루에 22시간씩 울면서 연습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연주할 수 있도록 죽어라 했다.”
 
그렇게까지 연습에 매달린 이유는.
“콩쿠르나 서울대라는 타이틀 말고 음악인으로 진짜 인정받을 수 있나 알아보고 싶었다. 내 음악만 듣고 연주 다시 듣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콩쿠르 경력 없이도 어떤 학교에서 교수로 오라고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딱 10년 걸어봤다. 8년 차에 다시 한국으로 갈 짐을 싸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다가 클리블랜드 음대 교수로 임용이 됐다.”
 
데뷔 30년인데도 여전히 연습량 많은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연습하고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다. 지금도 보스턴에서 스승을 만나면 연습 안 한 거 들킬 것 같은 마음에 피해 다닐 정도다. 뉴욕에서 살 때는 아이들 재우고 나서 밤새워 연습하고 아이들 아침에 학교 보낸 다음에 잠깐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아들은 ‘연습을 그렇게 해도 아직도 못 하는 거야?’하고 묻곤 했다.”
 
그 아들이 올해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아들이 입시용 에세이에서 연주 때문에 몇주씩 집을 비우는 엄마 대신 자신이 동생을 돌보고 공부도 혼자 하며 컸다는 이야기를 썼다. 나는 이번에도 연주하러 다니느라 입학식도 못 봤다. 얼마 전 전화로 지금 기숙사 들어간다는 소식만 들었다.”
 
연주자이자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고루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진정한 예술가는 아니더라도 진정한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연주에 집중한다고 엄마로서의 일을 차단하고 ‘연주자는 이래야 해’ 하는 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 보낸 시간도 내 음악에 도움이 됐을 거라 믿는다.”
 
12월 서울에서 30년 전 연주했던 곡을 무대에 올린다.
"베토벤 소나타 28번인데 30년 전에는 흐트러짐 없는 연주로 승부를 보려 했다면, 지금은 특히 4악장에서 완전히 자유가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연주는.
"어떤 음악이 나올지를 나도 모르고 따라갔을 때다. 더  자유로워야 한다. 연습도 달라졌다. 손가락을 제자리에 놓기 위해서 뿐 아니라 거기에서 어떤 것들이 자유롭게 튀어나오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연습을 한다.”
 
30년 동안 다 해본 것 같다. 그래도 마음에 다짐하는 게 있다면.
“행운과 실력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최고라서 그 위치에 있는 건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인지. 명성이나 지위 이런 건 다 부수적인 거고, 끝없이 노력하는 거 없이는 죽은 인생 아닌가 싶다.”
 
백혜선은 최근 연 40회 정도 국내외 무대에 서고 있다. 2018년부터는 베토벤의 모든 소나타(32곡)와 협주곡(5곡)을 나누어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12월 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데뷔 30주년 기념 독주회에서도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를 연주한다. 내년 뉴욕에서 협주곡들을 연주하고 나면 베토벤 전곡 프로젝트가 마무리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