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보수의 길을 걸어온 윤평중(63)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평가보다 한층 냉혹했다. 정치철학과 사회철학 연구에 뿌리를 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실 정치를 향해 쓴소리해 온 윤 교수는 “진보진영이 정의·공정·신뢰라는 측면에서 중상을 입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키워드는 뭔가.
- “‘계급’이다. 한국사회 욕망의 지형도가 지역감정이나 진영 대립이 아니라 계급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표면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지역과 진영의 문제가 계급의 문제와 결부되고 있다. 조국 사태로 영화 ‘기생충’이 다시 주목받았다. ‘10 대 90’이 아니라 ‘1 대 99’의 사회로 재편되면서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서민과 귀족의 문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진보 귀족+보수 귀족’의 갈등이 문제임을 드러낸 사건이다.”
- 그 후과는 뭔가.
- “첫째는 촛불이 상징했던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의 훼손이다. 정의와 공정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분분하지만 일상적 차원에서 보면 어린아이도 어린이집 교사가 먹는 것과 돌보는 것을 차별하면 분노한다. 정의와 공정은 공기 같은 것이고 그 핵심적인 속성은 일관성이다. 잘못한 일은 누가 했더라도 잘못했다고 평가돼야 정의와 공정이 유지된다. 진영 간의 패싸움 속에서 그 가치가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는 더 이상 촛불정부임을 자임하기 어려워졌다.”
- 두 번째는.
-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지만 정권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손실이다.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붕괴다. 세계투명성기구 등의 평가에 따르면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저신뢰 사회’다. 경제력과 군사력은 선진국 수준이 됐지만 신뢰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밑바닥이다. 특히 검찰·경찰·청와대 등 권력기관의 신뢰도가 낮다. 조 장관은 정의와 공정을 외쳤던 진보 진영의 얼굴이었다. 그런 사람이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거짓말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일삼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기에 진보 진영의 다른 명망가들이 끼어들었다. 앞으로 어떤 이미지가 좋은 공인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 민주당은 집토끼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그런 면이 있다.
- “민심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여론의 흐름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라는 의미에서의 헤게모니(hegemony)에 중상을 입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큰 오판을 했다고 본다.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가 있어야 움직인다는 민주사회의 대전제를 정치공학적 판단에 의해 허문 것이다. 그동안 여권은 ‘자유한국당과 태극기 부대=악(惡)’이고 자신들은 선(善)이라는 이분법을 구사해 왔다. 자신들이 선이거나 정의의 편임을 자처하려면 다수 유권자를 설복할 수 있는 명분과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와 여권이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에 중대한 균열이 발생했다. 그동안 개별적인 정책 오류가 발생했어도 시민 다수가 그 진정성과 대의명분에 동의했기에 정권이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지지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 여권은 ‘검찰의 정치’를 비판하면서 개혁의 동력을 찾고 있다.
- “검찰은 검찰 만의 조직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일단 검찰이 살아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검찰과 청와대라는 두 거대 권력이 맞부딪히는 게 꼭 나쁜 일은 아닐 수 있다. 검찰 권력과 대통령의 권력은 모두 민주적으로 통제되어야만 하는 권력이다. 둘이 대립해 그런 결과에 도달할 여지도 있다. 검찰은 수사를 하고 정부는 개혁을 하면 된다.”
윤 교수는 “희망은 정치가 아닌 시민들의 균형감각과 상식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진영대립만 남은 정치에 기대할 것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윤 교수는 “촛불은 한국 민주주의의 거대한 성취였다. 그 성취를 만들어냈던 깨어있는 시민들의 균형감각과 상식이 또 다시 다른 결과를 만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며 “어떤 정당을 지지했더라도 그 진영의 누군가가 어떤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고, 또 상대 진영의 비판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로 반응할 수 있는 그런 감각과 상식 이야기다”고 덧붙였다.
4인 학자가 본 조국 사태가 남긴 것
②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