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론] 지상파 방송의 위기, 시청자 신뢰부터 회복해야

중앙일보

입력 2019.09.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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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지상파 방송사들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방송 3사가 비상대책을 발표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같은 느낌이다. 급기야 프로그램을 줄이겠다는 벼랑 끝 대책까지 나오고 있다. ‘침체의 소용돌이(Downward Spiral)’가 시작되고 있다. 독자 감소로 경영 압박에 처한 신문사들이 제작비를 줄여 뉴스 질이 떨어지면서 독자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지상파 방송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어쩌면 급락하는 시청률에서 보듯 국민에게 외면받으면서 생긴 절망감과 패배감이 더 심각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경영 압박을 이유로 중간광고 허용 같은 정책적 지원을 강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중간광고가 허용되더라도 인터넷·모바일로 빠져나간 광고주들을 되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리어 공영성을 훼손한다는 비난만 받을 수도 있다. 적자 폭을 다소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 처방은 아니다. 광고매출이 1조5000억원 이하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광고수익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가 본질적 문제다.

KBS·MBC 등 상반기 적자 눈덩이
편향된 보도로 국민의 신뢰 잃어

광고수익이 급락하는 이유는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들이 국민의 외면을 받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여섯 살 유튜버보다 낮은 시청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지상파 방송 시청률 추락 원인은 인터넷·모바일 매체의 급성장으로 기존 방송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정치적 편향성과 방만한 경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방송의 추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공영 방송은 오래전부터 정치권력의 통치 수단으로 변질했다. 정파를 불문하고 정치권은 공영방송을 선거 승리의 전리품으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절름발이 공영방송은 항상 편파보도 같은 공정성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편향적 인사들이 진행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과 정권 옹호적 방송으로 적지 않은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다. 그러니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방송의 시청률이 추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공영 방송사들은 오랜 독과점 구조 아래 방만한 조직과 경영 행태가 견고하게 고착돼왔다. 공영 방송 종사자들이 억대 평균 연봉을 받는다는 비판에서 보듯이 종사자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다. 노조 출신 사장과 집행부가 들어선 이후 더 심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조직 이기주의가 정치적 편향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경영압박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중간광고를 허용하고 UHD(초고선명) 편성 의무를 유예해주는 것 같은 정책들이 그런 것들이다. 정권과의 유착 논란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KBS 수신료 인상 갈등이다. 집권하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야당이 되면 반대로 돌아서는 이율배반적 행태들이다. 실제로 KBS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는 KBS 이사회와 방송통신위원회, 국회 등 세 차례의 ‘여·야 대리전’을 치러야 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공영 방송은 조직의 존립과 구성원 이익을 위해 정치권력과 밀착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지난 40여년, 몇 차례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여전히 편파방송과 정권 나팔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지상파 방송과 공영 방송의 경영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해법은 중간광고 같은 ‘지상파 방송 구하기’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독립된 진정한 공영방송을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권력과 밀착돼 불공정 시비가 지속한다면 지상파 방송의 침몰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을 살리는 정도는 교과서에 나오는 ‘정치권력과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 방송’으로 거듭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