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핵무장에 관한 한 워싱턴 전문가들의 기류는 ‘그럴 일 없다’이다. 랜드 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8일(현지시간) 본지에 “미국은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도 “미국은 한·일 핵무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비건이 핵무장을 꺼낸 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북핵 이 정도로 심각하다 알리고
중국이 일정 역할 하도록 압박
북미, 팽팽한 물밑 줄다리기 시사
비건 대표는 지난 1월 스탠퍼드대 공개 강연에서 핵물질 생산시설 폐기→핵ㆍ미사일 신고 및 비축고 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와 상응 조치의 로드맵을 공개했다. 한 달 후인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이번엔 비건의 작심 연설이 후속 회담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②“북핵, 감내할 대상 아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국제 사회가 북한 핵무기를 감내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데, 북핵 위협이 커지면 미국의 핵우산이 약화하고 동맹국들이 핵무기 보유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 있다는 점을 비건 대표가 지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가 점점 북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는 경고의 의미라는 것이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도 “비건 대표는 세계가 처한 냉혹한 앞길을 상기시키기 위해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핵무장론을 인용했다”고 말했다.
③“중국 나서라”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비건 대표가 중국에 경고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비핵화가 실패하면 한ㆍ일이 자기방어를 위해 동북아에서 군비 확장 경쟁을 벌일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북핵 협상에서 미국을 도울 가능성은 없지만 비건 대표의 미묘한 경고는 최소한 중국이 북한을 돕는 상황은 만들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비건 대표의 발언은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북(2~4일) 직후 나와 시기적으로 더욱 미묘했다. 왕 위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예방하지 못했던 데다 이용호 외무상과의 양자회담에서도 비핵화 문제보다는 북ㆍ중 관계 과시에 더 방점이 찍혔다. 비건 대표의 발언엔 왕 위원의 방북 결과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미국의 속내가 담겼다는 해석도 외교가에서 나온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