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리 봐도 도가 지나치다. 당장 내년에만 적자를 메꾸기 위해 국채 60조원을 찍어내겠단다.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할 내년도 국방 예산(50조2000억원)보다 많다. “선심성 예산”이란 비판이 쏟아지는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 같은 것을 잔뜩 반영한 탓이다. 한술 더 떠 올해 38조원인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를 내년에 72조원, 2023년에는 9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한다.
2023년 국가부채 1060조원
“내년 이후 성장 지속”이라며
차기대선까지 곳간 풀기 계속
정부·여당은 “문제없다”고 일축한다. 2023년에 국가 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46.4%로 일본(222.5%), 영국(116.4%), 미국(106%)보다 훨씬 낮다는 주장이다. 경제학자들이 “여차하면 자기네 돈을 찍어 막을 수 있는(기축통화국) 미국·일본 등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그렇게 외쳐도 쇠귀에 경 읽기다. 호주·스위스·스웨덴·뉴질랜드·덴마크 등이 일제히 부채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는 점은 도외시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우리처럼 40% 언저리인 나라들이다. 걸핏하면 엉뚱한 통계 들이대는 습관이 또다시 도진 듯하다.
기축통화국이 아니란 점 말고도 한국은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야 하는 특수성이 차고 넘친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통일 대비 등은 이젠 두말하면 잔소리다. 1061조원 국가부채에 잡히지 않은, 600조원 가까운 공공기관 부채도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그것 말고도 문제가 많으니까.
우선은 1600조원 가까운 가계부채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주요국 가운데 7번째로 높다. 그런데 국가 재정이 나빠진다면? 우선 은행 신용등급에 영향을 준다. 만일에 대비해 나라가 은행을 뒷받침할 여력이 줄기 때문이다. 그러면 은행은 이자를 더 주고 돈을 조달해 와야 한다. 대출 금리도 따라 오를 것이다. 그건 가계에 치명타다. 그러잖아도 평균적으로 한 달 반 수입을 원리금 갚는데 고스란히 쏟아붓는 게 국내 가계의 현실이다.
기업 쪽도 만만찮다. 한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는 102%로 세계 16위다. 세계 11위인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별로 문제 될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지난해 3분의 1이 넘는 기업들이 이자 낼 만큼도 돈을 벌지 못했다. 이들이 택하는 길은 대부분 ‘빚 더 내 빚 갚기’다. 그러면서 자꾸 채무가 늘어난다. 구조조정의 불안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현실로 다가오면 여기에도 막대한 국가 재정이 투입될 터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도 한국에 “재정 여력 확보”를 주문했다. 정부·여당은 그와 반대로 재정 여력을 팍팍 갉아먹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상한 것은 경기 살리기에 재정을 쏟아부을 내년보다 그 뒤에 적자가 더 커진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 문제나 여러 가지 경제 상황이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경기가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것이어서 2023년까지는 돈을 풀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면서 ‘국가재정운용계획’에는 ‘2020년 이후 수출 회복과 함께 혁신성장 등 정책 노력에 힘입어 성장세 지속’이라고 적어 놓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따져 물으려다가 그만뒀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테니까. 당장 2022년엔 대선 아닌가. 하여튼 정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산안과 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넘겼다. 과연 국회는 재정 건전성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릴까.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