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카드 접는 게 순리다

중앙일보

입력 2019.09.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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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조 후보자의 청문회 다음 날인 지난 7일부터 임명이 가능한 이른바 ‘대통령의 시간’이 시작됐지만 여론 흐름과 검찰발 돌발 변수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제 민주당이 최고위원회의와 고위 당·정·청 회의를 통해 조 후보자에 대한 적격 판단을 고수하며 검찰의 수사를 강력 경고키로 한 것은 민심과는 동떨어진 실망스러운 조치였다. “사법개혁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저항이 확인된 만큼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으로 가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전인수(我田引水)를 넘어선 궤변이자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일 뿐이다.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조 후보자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개인 컴퓨터에 동양대 총장의 직인이 그림 파일 형태로 보관된 사실이 어제 보도되며 여론은 여전히 냉랭한 상황이다. 만일 조 후보자 임명 이후 정 교수를 둘러싼 혐의들이 검찰 수사에서 구체화되고 또 다른 의혹들이 꼬리를 물 경우 국정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꼬일 수 밖에 없다. 여기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조 후보자 딸과 아들이 인턴 활동 증명서를 받는 과정도 수사 대상이어서 해당 대학 교수인 조 후보자에게 수사의 불똥이 튈 가능성도 크다. 향후 검찰 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사법적 변수가 됐는데도 임명 강행을 고수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뿐이다.

실망스런 여권의 ‘조국 적격’ 입장
정파를 떠나 상식과 정의의 문제
민심 헤아린 대통령 결단 필요해

경실련이 “조 후보자가 기자회견·청문회에서 의혹들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실련은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조 후보자는 오히려 검찰 수사와 향후 재판을 통해 의혹을 밝혀야 할 과제가 생겼다”고 밝혔다. 청문회 이후 이뤄진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도 조 후보자 임명 반대(49%)가 찬성(37%)보다 12%포인트 높게 나왔다. 특히 응답자의 59%는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조 후보자에 대한 임명은 ‘보수냐, 진보냐’ 등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잣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조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통해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기득권층 대부분이 부조리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에 허탈해 하고 있다. 위선과 욕망을 평등과 공정, 정의로 포장한 조 후보자의 민낯을 보고선 자칭 촛불정부 세력의 대의에도 신뢰를 거둬들이려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재판의 피고인이자 검찰 수사의 피의자인 조 후보자 부인의 해명 글을 자신의 SNS에 공유, 전파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은 물론 형사사법 절차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치기어린 행동이다. 검찰 수사팀을 ‘미쳐 날뛰는 늑대’에 비유하고, 검찰이 모든 자료를 유출한 것처럼 프레임을 짜 몰아간다면 검찰의 독립을 얘기할 자격조차 없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투명한 처리가 검찰 개혁의 시발점이다. 조 후보자야말로 문 대통령이 수사를 주문했던 ‘살아 있는 권력’ 아닌가.


박탈감에 절망한 미래의 주역 2030세대, 상식이 지켜지길 바라는 다수의 민심을 이젠 대통령이 헤아려야 할 시점이다. 청와대 측근들과 여당 지도부의 정치공학적 강경론에 함몰되기보다 다수 국민의 판단을 수용하는 게 대통령과 국정의 순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