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 남성의 노랫소리가 구성지다. 판소리인데 가사가 색다르다.
남원경찰서 조휴억 경감, 색다른 범죄 예방법
"흥겨운 우리 가락으로 홍보하니 효과 더 커"
올해 말 정년…"재능 기부하고 유튜버 도전"
조 경감은 6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어르신들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범죄 유형별 수법과 대처법을 흥겨운 우리 소리로 전하니 일반적인 홍보보다 효과가 훨씬 좋다"고 말했다. '판소리 고장'에서 근무하는 현직 경찰 간부가 지역 특성에 맞게 범죄 예방에 나선 것이다.
조 경감은 지난해 1월 운봉파출소장으로 근무할 때 전화금융사기 예방 요령이 담긴 판소리를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한다. 비전마을 노인회관에서다. 그는 "자료를 보고 설명하다 마당놀이처럼 '어르신들께서 깜빡하면 속을 수 있는 전화금융사기 예방 요령을 판소리로 풀어보겠다'고 시작하니 반응이 뜨거웠다"고 했다. 노인들은 '얼씨구 좋다' 추임새를 넣거나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고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남원경찰서는 지난해 '전화금융사기 예방 캠페인 국악 버전'과 '교통사고 예방 요령 판소리 버전'이란 제목의 홍보 동영상도 만들었다. 각각 1분 59초, 1분 32초짜리 영상에는 조 경감과 그의 '판소리 스승' 김수아 국립민속국악원 명창이 출연했다. 김 명창이 가락을 만들고, 조 경감이 범죄 예방 요령이 압축된 가사를 썼다.
춘향가 사랑가를 개사하기도 했다. '우리 둘이는 천정(天定)이니 만년 간들 변할쏜가. 어허둥둥 내 사랑아' 소절을 '우리는 모두 교통 안전, 만년 가도 교통 안전, 사고 없는 우리나라'로 가사를 바꿨다. 남원경찰서는 해당 동영상을 노인층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이나 마을회관 등에 상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농요 한 소절을 불렀다. "'앞은 점점 멀어져 가고, 뒤는 점점 가까워지네' 이 소절이 기억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꼭 녹음해 두고 싶다"고 했다.
그가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 건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던 20여 년 전이다. 동편제 대가인 강도근 명창에게 배우던 막걸릿집 여주인이 부른 '쑥대머리'를 듣고 감동해서다. 쑥대머리는 춘향가의 한 대목이다. 조 경감은 "가게에 있던 쑥대머리 가사집을 복사해 집에 가지고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일에 치이다 보니 잊고 지냈다"고 했다.
그러다가 2017년 9월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에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매주 한 차례씩 국악원 단원들에게 배웠다. 김수아 명창도 이때 만났다. 현재 조 경감은 춘향가 사랑가와 진도아리랑 등 판소리 단가 10곡과 민요 3곡을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20여 년 전 배우고 싶던 쑥대머리를 거의 다 배워 뿌듯하다"며 "요즘은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이 부르는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혼자서 수백 번씩 연습한다"고 했다.
올해 말 정년을 앞둔 그는 "퇴직 후에도 재능 기부를 통해 판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며 "'퇴직 경찰관이 판소리로 알려주는 범죄 예방 요령' 같은 내용으로 유튜버에도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남원=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