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는 4일 제22차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경영권 희석 우려 없는 투자유치 활성화를 위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엄격한 요건 아래에서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겠다”며 “9월까지 구체적인 도입방안을 마련한 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벤처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비상장 벤처에 한해 허용
스타트업 창업자, 투자 받아도
경영권 잃을까 걱정 안해도 돼
구글 대주주 1주당 10배 의결권
차등의결권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는 쪽은 미국의 혁신기업이다. 구글은 2004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할 당시 1주당 10배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했다. 덕분에 구글 공동창업자들은 16억7000만 달러를 조달하면서도 의결권 지분 63.5%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페이스북ㆍ링크드인ㆍ그루폰 등 급성장한 혁신기업은 차등의결권주를 발행하며 기업공개(IPO)를 했다.
이들 혁신기업의 경영 성과는 일반 기업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4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나스닥 상장사 중 기업가치 2억달러 이상인 기업 110곳을 분석해보니 지난해 이들 기업의 매출은 일반 기업보다 2.9배 높았고, 영업이익은 4.5배 높았다. 고용 측면에서도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혁신기업이 일반기업보다 1.8배 더 많은 직원을 고용했다. 한경연 유정주 혁신기업팀장은 “차등의결권이 이들 성과의 유일한 변수는 아니지만, 차등의결권이 창업자가 경영권 방어에 신경 쓰지 않고 혁신 성장을 이뤄낼 수 있던 중요한 배경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혁신 기업의 IPO를 유치하려는 전세계 증시도 차등의결권주를 인정하는 추세다. 알리바바를 2014년 뉴욕증시에 뺏긴 홍콩은 지난해부터 차등의결권을 인정했다. 이후 샤오미와 미이투안디엔핑 등 중국의 혁신 IT기업들이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홍콩과 경쟁하는 싱가포르도 지난해부터 차등의결권을 인정했다. 일본은 2005년 개정 회사법에서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바 있다.
국내에선 여당이 지난해부터 차등의결권 도입에 시동을 걸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벤처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내용의 ‘벤처기업 육성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올해 2월엔 여당 정책위원회에서도 벤처기업의 ‘성장 사다리’로서 차등의결권이 필요하다며 추진 의사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경실련 등 차등의결권 반대 측은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과 차등의결권은 별개의 문제”라며 “차등의결권이 결국 일반기업까지 확대되면 경영진이 무능해도 이를 제어할 수 없어 ‘세습경영’이 가능해진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재계는 차등의결권을 모든 기업에 허용한다고 해도 기존 상장 대기업이 이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주총에서 주주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가능한 일인데 국내 대기업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혁신성장이 필요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반대만 고집하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대기업보다도 성장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차등의결권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경제에 국경이 없어져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늘고 있는 만큼 기업 스스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