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어머니 칠순 잔칫날 유독가스로 뒤덮인 고층건물에 있던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의 탈출기를 그렸다. 대학 산악부 출신 용남은 컨벤션 센터 간판과 외벽장식을 이용해 탈출한다.
“저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냥 연기 마시고 죽을래요. 헤헤.”
관객 900만명 동원 화제의 영화
오빠가 주연배우 암벽등반 지도
소방대원 남편도 재난영화 관심
부상에도 올림픽 출전권에 올인
영화에서 용남은 로프를 끊더니 맨손으로 사자 머리 장식을 이용해 건물 외벽을 오른다. 김자인은 “그 장면을 보면서 ‘왜 미끄럽고 아무것도 없는 부분을 잡고 낑낑대며 올라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에는 홈 또는 주름이 있거나, 손이 걸리는 부분을 잡는 편이 낫다”고 클라이밍 선수다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영화에서는 구조헬기에 자리가 모자라자 주인공 남녀는 가족을 탈출시킨 뒤 옥상에 남는다. 김자인은 “그 장면에서 남편에게 ‘어떻게 사람을 놔두고 갈 수가 있지’라고 물었더니, 남편이 ‘안전상 인원이 초과하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김자인은 실내암벽장에서 만난 소방공무원 오영환(31)씨와 2015년 결혼했다. 오씨는 중앙119구조대에서 헬기 구조를 맡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로 산불 진화도 다녀왔다.
사실 김자인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위험한 도전을 한 일이 있다. 2017년 5월 22일, 그는 맨손으로 지상에서 롯데월드 타워 정상까지 올랐다. 건물은 123층, 높이는 555m다.
건물 외벽에 홀드(인공손잡이)를 설치하지 않은 채, 건물의 자체구조물과 안전장비만 이용해 완등했다. 그는 “당시 하도 높아서 현실감이 없었다. 안전장비도 갖췄고, 오직 완등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던 날 김자인은 인공암벽을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그는 “병원에서 엄청 아픈 주사를 손에 맞고 오는 길이다. 7월 스위스 리드 월드컵 도중 왼손 인대가 파열됐다”며 “내년 올림픽 출전권 확보를 위해선 훈련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스포츠 클라이밍 콤바인은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이다. 리드와 볼더링(5m 인공암벽 4~5개를 놓고 완등 횟수를 겨루는 종목), 스피드(15m 암벽을 누가 빨리 올라가는지 겨루는 종목) 세 종목 점수를 합산해 메달 색을 가린다.
지난 10년간 리드 여자 세계 최강자였던 김자인은 “스피드 전문선수는 7초대가 나온다. 나는 지난해 뒤늦게 시작해 최고기록이 10초12”라며 “육상에서 100m와 마라톤이 다른 것처럼, 세 종목은 힘을 쓰는 메커니즘이 서로 다르다. 주 종목 리드에서 상위권에 오른 뒤, 스피드에서 최대한 순위를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올림픽 출전권은 20장이다. 부상 중인 김자인은 지난달 출전권 7장이 걸린 세계선수권에서 40위에 그쳤다. 11월 프랑스 월드컵(6장)과 내년 5월 아시아선수권(1장)을 통해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나선다.
체구(1m53㎝·41㎏)가 작은 김자인은 발 실제 크기보다 20㎜ 작은 205㎜짜리 암벽화를 신는다. 발가락이 휘어지는 고통이 따르지만, 작은 신발을 신어야 발에 힘을 모을 수 있다. 요즘도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김자인의 체지방률은 8%에 불과하다.
현 IFSC 클라이밍 세계 1위 안야 간브렛(슬로베니아)는 20세다. 세계 3위 김자인은 “내년에 32세다. 나랑 오래 뛰었던 동갑내기 일본 선수는 지금 코치다. 요즘 대회에 나가면 나이로 톱3에 든다”며 “그래도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클라이밍이라 포기할 수 없다. 올림픽까지 도전하고 은퇴를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