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에 한 번 ‘미술의 도시’가 되는 베네치아의 아침, 골목길 작은 미술관 앞에는 개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이 바로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유화입니다. 자기 키보다 큰 이 그림 앞에 선 관객들은 선물 받은 사람처럼 나직이 탄성을 지릅니다. 바로 옆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경쟁하듯 새로움을 전시하지만, 많은 이들은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찾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화가는 무엇을 그릴까요. 마그리트의 경우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보고 그립니다. 집·나무·하늘 같은 평범한 풍경을 공들여 화폭에 모방하는 것 같지만 실은 태연하게 밤에 낮을 그리죠. 낮과 밤처럼,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소재를 한 화면에 그린 이 그림은 관객을 잡아끄는 힘을 갖고 오래도록 사랑받게 됐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함께 서지 못할 것이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지금처럼요.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