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반부터 모이기로 했다는 데 벌써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홍콩 동방일보(東方日報) 기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평가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기자도 많았다. 로이터 카메라 기자는 캄보디아에서 어제 왔다고 했다.
우리 경우엔 집회나 시위가 열리면 대개 모임을 기획한 지도부가 무대에 올라 일장 연설을 하고 또 구호를 선창하면 따라 하는 게 보통인데 홍콩 시위에선 도대체 시위를 주도하는 이를 찾기 어려웠다.
공개적으로 앞에 나서 말하는 이가 없다. 누군가가 구호를 외치면 따라 하고 또 어느 사이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완장을 찬 이들이 있다. ‘관찰원’ ‘홍콩 인권 감찰’ ‘긴급 구조대’ 등 다양하다.
서던 구장에 모인 이들은 이날 홍콩의 죄인을 위한 기도를 갖겠다고 했다. 죄인은 케리 람 행정장관을 뜻했다. 이어 구호가 터졌다. “홍콩인 힘내라”와 “내 눈을 돌려달라”는 외침이 이어졌다.
“내 눈을 돌려달라”는 건 지난 시위 때 경찰이 쏜 물체에 맞아 오른쪽 눈을 잃은 여성을 대신한 말이다. 그래서인지 시위대가 들고 있는 그림은 케리 람 행정장관이 오른쪽 눈에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찬송가를 부르며 행진하는 시위대 위로 드론이 떴다. 경찰이 띄운 것이다. 시위대로부터 야유가 쏟아졌다. 오후 2시 30분 이들이 옛 홍콩 총독부 부근에 도착했을 때 홍콩 특유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30여분 정도 세찬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이들의 행진을 막지는 못했다. 찬송가, 홍콩인 힘내라, 내 눈을 돌려달라는 노래와 외침이 계속됐다. 그러나 총독부와 미국 총영사관이 자리한 어퍼알버트 로드로 향하는 길목은 경찰이 막아서고 있었다.
방패와 총 등으로 무장한 경찰을 향해 한바탕 야유를 퍼부은 시위대는 천천히 방향을 바꿔 홍콩 최고 중심가 센트럴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기사 송고를 위해 전철을 탔다. 센트럴에서 완차이까지는 두 정거장.
세 시간이 넘게 완차이 앞길을 새로운 인파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센트럴로 향했던 시위대는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며 구호를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8월 31일 홍콩의 시위는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백색 테러와 검거 선풍이 불고 장대비가 쏟아졌지만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홍콩인의 정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날이 저물며 시위는 폭력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청년들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검은 옷이다.
홍콩 경찰은 마침내 센트럴과 애드머럴티 등 중심가를 점령한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와 최루탄 발사를 시작했다. 시위대를 가려내기 위한 파란 색감의 물대포가 뿌려지기도 했다.
시위대는 또 도로를 부셔 벽돌을 준비했다. 레이저 불빛이 어지러이 불길 사이를 뚫고 이리저리 건물을 비추는 가운데 건물 철골 구조물을 두드려 북소리 효과를 낸다. 불은 더욱 커지고 기자의 카메라 세례가 터진다.
밤 8시가 가까워지자 폭동 진압 경찰이 완차이를 향해 서서히 진군해 내려왔다. 해산을 명령하는 경찰 마이크가 가까워짐에 따라 시위대의 함성도 커졌다. 한동안 경찰과 대치하던 시위대는 다시 동쪽인 퉁뤄완 쪽으로 밀려났다.
8월 31일 홍콩의 시위는 여느 때와 같이 물대포와 최루탄, 도로 한 가운데 불길이 검은 먹구름을 한 동안 뿜어내는 상황을 연출했다. 시위대 요구에 홍콩 정부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홍콩 시위는 9월로 접어드는 다음 주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재야단체가 8월 31일 시위 취소했지만
홍콩 번화가 센트럴 가득 메운 시위대
13주 연속의 주말 시위 이어가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 발사로 진압
시위대는 도로 가운데 맞불로 맞서
9월에도 홍콩 시위는 계속될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