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젠핑은 지난 7월 위안랑(元朗) 전철역에서 흰옷 입은 남성 200여 명이 임산부까지 폭행하는 백색 테러를 벌인 데 항의해 시위를 조직했던 인물이다. 과거 홍콩의 독립을 추진하는 조직인 ‘홍콩인자결(港人自決)의 구성원으로 활약한 바 있다.
이에 앞서 29일 점심 무렵엔 31일 시위를 제창한 ‘민간인권전선’의 리더 천즈지에(岑子杰)가 식당에서 야구 방망이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괴한 두 명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천의 동료가 이를 제지하다가 왼쪽 팔에 커다란 부상을 입었다.
주목할 건 이 날 테러를 자행한 사람 모두 남아시아 사람으로 보인다는 증언이 나왔다는 점이다. 홍콩인이나 중국 대륙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테러를 위해 고용된 외국인, 즉 ‘테러 용병’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 홍콩 입법회 의원으로 친독립파 정당인 ‘열혈공민(熱血公民)’의 정숭타이(鄭松泰) 주석도 경찰에 체포되는 등 29일과 30일 이틀 동안에만 약 20여 명 이상이 잡혔다. 황즈펑 등 일부는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홍콩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엔 충분했다.
홍콩 경찰이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시위대를 여름 한 철의 메뚜기로 비유한 중국인민해방군의 비아냥에 부합이라도 하듯 찬 바람 불기 전에 본격적인 소탕 작전에 나섰다는 관측이 많다.
홍콩 재야단체가 대규모 시위를 예고한 31일이 분수령이 됐다. 31일은 중국이 홍콩 행정장관의 간선제 정책을 발표한 지 5주년 되는 날이다. 중국과 영국은 과거 홍콩반환 협정 때 2017년에는 홍콩 행정장관을 홍콩인의 손으로 직접 뽑는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14년 8월 31일 이 합의를 무시하고 선거위원회를 구성해 행정장관을 선출하도록 하는 간선제 방침을 확정해 발표했다. 홍콩의 운영을 중국 중앙 정부가 계속해 틀어쥐겠다는 계산에서다.
마침 31일로 간선제 5주년을 맞아 민주인권전선을 주축으로 대규모 시위가 기획됐지만, 홍콩 경찰은 거꾸로 이날을 하나의 분기점으로 대대적인 시위대 제거 작업에 나선 것이다. 홍콩 경찰 배후엔 중국 중앙 정부가 있다.
중국은 크게 3단계 작전으로 시위대 분쇄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의 정보 소식통은 30일 밝혔다. 첫 단계는 홍콩 경찰의 사기 진작이다. 먼저 지난해 정년 퇴임한 전 경무부 처장 류예청(劉業成)을 6개월 임기 ‘특별직무 부처장’ 직책을 줘 다시 불렀다.
그는 2014년 우산혁명을 강제 진압한 대표적 인물이다. 또 홍콩 경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홍콩 경찰을 응원하는 인터넷 계정을 중국에 만들었다. 여기에 중국인들의 “홍콩 경찰 지지” 응원이 쏟아지고 있는 건 물론이다.
두 번째 단계는 시위대에 대한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 독려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말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이 찍혀 곤욕을 치렀던 홍콩 경찰을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에 초대하기로 했다고 홍콩 언론은 전하고 있다. 시위대를 거칠게 다뤄도 좋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마지막 단계는 시위대를 분열시키는 작전이다. 현재 홍콩 시위대 내부엔 다양한 목소리가 섞여 있다. 천하오톈과 같이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급진파, 황즈펑처럼 민주를 강하게 외치는 학생파, 평화적 시위를 강조하는 민간인권전선 등 다양하다.
홍콩 경찰의 작전이 먹히는 분위기다. 민간인권전선은 홍콩 경찰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31일 집회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콩 기독교 단체에선 31일 낮 ‘홍콩 죄인을 위해 기도하자’는 구호 아래 집회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엇박자다.
종교 집회는 경찰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아 가능하다. ‘홍콩 죄인’은 케리 람 행정장관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경찰에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황즈펑도 “홍콩이 최루탄에 의해 지배돼서는 안 된다”며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31일은 지난 6월 9일 100만 홍콩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송환법 반대’를 외친 이래 13번째 주말 시위가 예정된 날이다. 과연 어떤 모습이 연출될지에 따라 향후 홍콩 사태의 추이가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된다. 무너지느냐, 동력을 이어가느냐 싸움이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