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로위는 앤디 워홀과 비교할 만하다. 슬로바키아 이민자의 후손이었던 워홀도 광고판 그림을 그리던 상업미술가 출신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화가가 된 그도 팝아트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20세기 미국의 시각문화를 지배한 것은 바로 이 두 명의 이민자 출신 아티스트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둘이 모두 백화점 디스플레이 일을 했다는 사실. 역시 현대 문화의 최첨단은 쇼윈도인 것일까.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태극문양과 오방색
전통의 무비판 수용
각종 흉물 만들어내
1930~40년대는 장식미술과 모더니즘이 결합된 아르데코(Art Déco)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이었고 도시적이면서도 장식적이었다. 대중은 이런 디자인을 좋아했다. 그에 반해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모던 디자인은 엄격한 질서를 추구한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지성적이기는 했지만 대중에게 그리 친근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나치는 바우하우스의 모던 디자인을 볼셰비즘이라고 부르며 탄압했다.
디자인에서 장식미술과 모더니즘은 전혀 다른 역사적 패러다임에 속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더니즘이 장식미술과 만나면서 일정하게 대중화되고, 장식미술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봉건적인 장식주의와 결별하고 현대적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서구의 디자인 역사에서는 이러한 습합과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장식미술과 모던 디자인의 습합과 조화를 한국 현대디자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과거의 장식미술은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무반성적으로 미화된다. 그래서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태극 문양과 오방색은 많은 경우 키치(Kitsch, 저속한 모방물)가 되고 만다. 그런가 하면 서구로부터 유입된 모던 디자인은 그 이념적 측면은 제거된 채 하나의 스타일로, 즉 모던 스타일로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한국의 모던 디자인, 아니 모던 스타일은 서구와 달리 디자인의 소금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식미술과 모던 디자인은 완전히 따로 논다. 장식미술과 모던 디자인의 또 다른 융합 버전이랄 수 있는 포스트모던 디자인조차도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작동된다. 아무튼 장식미술의 현대화도, 모던 디자인의 합리성도 뿌리내린 적이 없는 이 땅에서는 여전히 전통과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흉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