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부(재판장 이관용) 심리로 열린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 현모(52)씨의 항소심 재판. 이날 현씨 측은 프레젠테이션을 활용해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현씨 측은 “1심 재판부가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했다”며 이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오류"라고 비판했다. 여러 간접사실 중 유죄 인정에 필요한 것만 합리적 근거 없이 취사선택했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이다.
1심 판결문 보이며 사실ㆍ논리 오류 비판
이어 현씨측은 동생의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국어 서술형 답안지를 화상기에 띄웠다. 현씨 측은 "재판부 판단과 달리 동생은 9번은 맞췄고 10번의 소문항 중 1개를 맞췄다"며 "이미 압수된 답안지인데 1심에서 이를 보지 못하고 사실을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언니의 같은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며 "언니는 8, 9, 10번을 다 맞췄는데 그럼 아빠가 언니에게만 답을 알려주고 동생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는 거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관점만 바꾸면 무죄 정황” 주장…재판장도 "고심”
또 현씨와 딸들이 공모해 답안을 유출했다면 시험지와 메모장을 집에 뒀다 압수당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처음 민원이 제기된 때부터 경찰이 현씨 집을 압수 수색하기까지 시간이 충분했다며 “살인범이라면 살인 도구를 집에 보관하다 압수당했다는 거냐”고 주장했다.
재판장은 30분 가까이 이어진 변호인의 주장을 경청한 뒤 "검사의 공소사실에도 문제가 아닌 답을 알려줬다고 돼 있는데, 유출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며 “휴대전화 포렌식 등에도 시험지를 찍은 사진 등은 발견되지 않았고, 여러 유출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재판장도 고심하게 된다”고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숙명여고와 닮은 외고 사건…“일부 무죄”
수사가 시작되고 이들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조씨와 황씨 사이에서도 빼낸 시험지의 흔적이나 금전적 대가가 오가는 등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학원 예상문제와 실제 시험문제가 몇 문제만 빼고 똑같았다는 학생들의 증언 ▶학교 시험지 검수 때 황씨가 여러 이유를 들며 시험지를 한 부 더 받은 점 ▶조씨가 학원생들에게 같은 예상문제를 두 차례 풀게 하며 문제 내용 등을 옮겨적지 못하게 한 점 ▶조씨와 황씨의 전화통화 내역 등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었지만 직접 증거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유출했다" 자백했다 말 바꿔 "허위 진술" 주장
조씨가 기소된 2건의 유출 의심 혐의 중 1건은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2학년 학생 일부도 "학원에서 준 예상 문제가 14~26문제까지 동일하거나 유사했다"고 진술해 재판에 넘겨졌지만, 학원에서 배부한 예상문제를 확보하지 못했고 실제 유사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1심은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했다. 조씨와 황씨 역시 항소한 상태다.
시험지 유출 등으로 업무방해죄가 적용돼 기소되는 사례에서 시험지를 직접 찍은 사진이나 유출한 정황이 직접 드러나지 않았다면 ‘무죄’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도진기 변호사는 "사람들이 ‘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형사 재판에서 ‘했음이 입증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간접 정황만으로 합리적 의심 없이 유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면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1심에서 수학적 확률 등으로 결론이 뒷받침된 점, 이 사건이 뇌물죄처럼 직접 증거가 없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란 점에서 현씨측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양태정 변호사는 "직접 증거가 없을 때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일반적인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