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 정부가 이같이 했다면? “인권탄압”이니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과 함께 정책 입안자는 자리보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유와 민주라는 가치와 함께 공화(共和)를 그 어느 나라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헌법정신이다. 좌우로 이어진 정권 교체와 함께 시민 의식도 그만큼 성숙해졌다.
분양가 상한제 이면의 정치논리
가짜뉴스 단속은 권위주의 발상
‘공무원=봉사자’ 개념 잊은 듯
1994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던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분양가 상한제를 대입해보자.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만들어진 토초세법은 토지 공개념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망국병으로 규정하면서 사회적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 침해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토지의 공적 개념보다는 개인의 사적 재산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를 택했다,
이번의 분양가 상한제는 규제를 소급해 적용할 수 있는지, 이에 따른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됐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토초세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하나의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몫으로 남겨두더라도 논란의 소지가 큰 정책을 밀어붙이는 이 정부의 태도는 ‘더불어 같이 하겠다’는 구호와는 거리가 멀다. 10억원 이상이 대부분인 강남에 집을 사는 사람들은 이 정부의 지지세력이 아니라고 판단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정책 입안자들이 손쉽게 재단해선 안 될 것이다. 정책 발표를 전후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이에 의견차가 있었던 것은 뭘 뜻할까. 경제를 정치논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정부 사람들의 발상이 점차 따분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민주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로 있다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된 한상혁 변호사의 첫 소감은 또 어떤가. “나는 법률가”라는 첫 마디와 “의도적인 허위 정보나 극단적인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는 발언이 영 귀에 거슬린다. 점령군 같은 권위주의적 태도가 느껴지지 않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보험회사 직원으로 있다가 늦깎이 변호사가 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가. 아니면 관권선거를 폭로했던 부친인 한준수 전 연기군수 사건을 계기로 응어리졌던 언론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가. 그의 색깔 진한 발언은 오히려 그에 대한 반발만 초래했을 뿐이다. 장관급 위원장으로서 미래를 보고, 방송 통신 분야의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고 점잖게 말하면 존재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건가. ‘법률가’라는 신분을 굳이 내세워 듣는 사람의 부아를 치밀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일전에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후임인 김조원 민정수석이 취임 일성으로 “국민 정서에 배치되는 언동을 엄정 조치하겠다”고 밝혀 여론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방통위원장 후보의 ‘극단적인 혐오’ 표현이나 민정수석의 ‘국민 정서에 배치되는 언동’은 엄밀히 말해 명확한 법률 용어가 아니다. 어떤 사람을 처벌하거나 감찰을 하려면 조사를 받는 사람이 수긍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분명해야 한다. 자신들만 알 수 있는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공무원을 옥죄고, 언론을 협박하고, 국민의 재산권을 함부로 다루려는 고위직들의 머릿속엔 헌법 7조에 규정된 ‘봉사자’라는 개념은 없어 보인다.
고위 공산당원의 한마디에 민간 부분이 일제히 머리를 숙이는 게 공산권 국가의 사회질서 유지법일 것이다. 자칭 촛불정부라는 사람들의 행정이 점차 강압적이고 폭압적으로 바뀌고 있다. 시중에 넘쳐나는 경제위기설을 의도적인 허위 정보이고, 극단적인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이라고 규정하기에는 이미 때가 지나버렸다.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