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동지 박지원·정동영·손학규···평화당 쪼개지자 제 살길 나섰다

중앙일보

입력 2019.08.13 01:00

수정 2019.08.13 07:01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2017년 4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차 중앙선거대책 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왼쪽 넷째부터) 공동위원장, 천정배 공동위원장, 손학규 상임위원장, 박지원 상임위원장, 정동영 공동위원장(이상 당시 직함) 등 참석자들이 필승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에서 박지원·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의원은 같은 꿈을 꿨다. 다른 정치 이력의 소유자들이었지만 그 순간엔 한 공간에서 합리적 개혁 세력을 모아 ‘제3지대’ 중심으로 새판을 짜보자고 모였다. 안철수 후보의 낙선으로 그 꿈이 실패한 뒤 2년 넘게 지났다. 그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 각기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어쩌면 정치적 꿈을 꾸기보다 생존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세 명의 ‘올드보이’가 생각하는 활로는 무엇일까.

 

①‘신당 창당’ 박지원

민주평화당 내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는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공식 발표했다. 오는 16일 소속 의원 9명은 탈당을 할 예정이다. 바른미래당 당적으로 평화당에서 활동해온 장정숙 의원은 당직 사퇴서를 이미 냈다.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가운데) 등 민주평화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기자회견장에 박지원 의원도 서 있었다. 유성엽 원내대표가 마이크 앞에 섰지만, 정치권은 대안정치의 핵심은 박 의원이라고 보고 있다. 박 의원은 대안정치가 탈당을 공식 발표하기 전인 지난 6일 라디오에서 먼저 “내일(7일)까지 정동영 대표의 답변을 기다려서 그 답변을 보고 행동에 옮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호남발 정계개편 3인의 전략
대안정치 “의원 4명 영입 진행”
추석 전후 창당준비위 발표설

정동영 “구태정치로부터 해방”
손학규 측 “무슨 감동이 있나”
대안정치와 신당설 선긋기

대안정치의 탈당은 예상보다 빠른 것이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비당권파 의원들은 “움직임이 있더라도 추석 전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안정치 소속 한 의원은 “국민의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룸(공간)을 만들기 위해 빨리 결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당권파 의원들은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박주선·김동철 의원 등 국민의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진로를 두고 회동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비당권파 의원들이 먼저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바른미래당 의원들과 힘을 합치지 못했다는 점은 대안정치에겐 향후 세 확장에서 약점이다.
 
대안정치는 새로운 인물 영입을 최우선 과제로 진행할 계획이다. 유 원내대표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현재 대안정치에서 4명의 의원이 인물 영입을 진행하고 있다”이라고 전했다. 대안정치 관계자는 “인물 영입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창당준비위를 발표할 텐데 시점은 추석 전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비당권파 탈당.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②‘재창당’ 정동영

대안정치의 탈당 발표 기자회견 직후 열린 민주평화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동영 대표는 “구태정치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에 집중하겠다”며 “곧 재창당 선언을 준비해서 재창당의 길로 가겠다”고 했다.


현재로선 정 대표에게 재창당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대안정치 소속 의원들의 탈당으로 평화당엔 정 대표를 포함해 5명의 의원만 남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재창당이라는 건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앞줄 왼쪽 세 번째)와 의원들이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상임고문·후원회장·전당대회의장 연석회의에서 탈당한 의원들을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정 대표 측근은 “호남에서 평화당 이름으로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 줄 서 있다. 당장이라도 의원 뱃지 달 만한 사람들이다. 내년 호남 총선에서 충분히 10석 이상 얻을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은 당 재건을 위해서는 정 대표가 호남 선거, 특히 자신이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전북 선거에 매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남은 5명의 의원 중 4명이 전북 의원이다.
 
정 대표는 정치적 추락의 순간, 전북으로 돌아가 살아 돌아온 경험도 있다. 2008년 대선에서 낙선한 뒤 미국 생활을 하던 정 대표는 2009년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귀국했다. 정 대표는 전주 덕진에서 출마할 생각이었지만, 당시 민주당 대표이던 정세균 의원은 “정동영을 공천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그러자 정 대표는 탈당 뒤 전주 완산갑에 출마한 고(故) 신건 후보(전 국정원장)와 연대해 선거를 치렀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낮았던 신 후보까지 당선시켰다. 정 대표는 이듬해 민주당 복당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재파인 황주홍·조배숙·김광수 의원마저 탈당할 여지가 있고, 평화당의 호남권 지지율은 높아야 5% 수준인 상황이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6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당 사수’ 손학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바른미래당을 사수하면서 향후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넉넉한 당 자산과 교섭단체 지위가 주요 고려대상이 됐다. 현재 80억 원 규모인 당 자산은 15일 3분기 교섭단체 정당보조금까지 받으면 100억 원으로 불어난다. 때문에 손 대표 측은 대안정치연대와의 ‘신당설’에 대해선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큰 그릇이 되는 과정에서 함께 한다면 좋겠지만, 그들과 우리의 연대가 무슨 감동이 있겠나. 우리가 당을 버리고 나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이달 중 발표 할 예정인 ‘손학규 선언’을 통해 총선 승리 비전과 정계개편에 대한 입장 등을 설파할 예정이다. ‘노욕’ 등 자신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혁신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 고려되고 있다.
 
다만 사실상 분당 상태인 당 상황이 변수다. 일각에선 총선을 앞두고 연말 쯤 비당권파가 집단 탈당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손 대표 측에선 비당권파 중 안철수계와 유승민계를 분리해 접근하는 ‘갈라치기’ 방식으로 상황을 타개한다는 복안이다. 한 당권파 관계자는 “손 대표는 기본적으로 안 전 대표가 저쪽(바른정당계)에 휩쓸리면 안 된다는 걱정이 크다. 안 전 대표와는 여러 가지 채널에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 전 대표는 현재로선 귀국 및 복귀 시점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윤성민·성지원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