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총장의 이력은 국민 상당수가 알만큼 인상적이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으로 행한 사상 초유의 ‘생중계 하극상’ 주인공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는 너무 놀라 잠시 혼미해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그의 기개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그에겐 ‘시베리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구·대전고검, 3년여의 유배 생활이 이어졌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버틴 끝에 그는 검찰의 수장이 됐다. 그가 6년 전 이같은 상황을 기대하고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는 당시 해야 할 일을 했고, 드라마틱한 정치 변화가 그를 살려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임명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부당한 정권의 지시를 거부하면 반드시 상응하는 보상이 따른다.”
이번 인사를 윤 총장이 좌우했다고 생각하는 법조계 사람들은 많지 않다. 청와대의 입김이 상당했을 것이고, 윤 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과 박근혜 국정농단 등 적폐수사를 함께한 후배들 챙기기도 벅찼을 거다. 그래서 현 정권을 겨냥했거나 정권에 미운털이 박힌 검사들을 구해내기엔 역부족이었을 거다. 하지만 총장이 된 마당엔 좀 달라져야 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권력에 할 말을 한 용기 있는 검사’란 호평을 물려받을 후배가 나오는 길목을 적어도 막아서서는 안 된다.
6년 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공판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고, 자신을 따르며 눈물 흘렸던 후배들의 존재도 큰 힘이 됐다. 믿음을 잃지 않은 선배들과 국민의 성원도 든든했을 것이다. 이제 윤 총장이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가 돼야 한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앞으로 검찰에 제2의 윤석열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전망은 밝지 않다. 하지만 윤 총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이가영 사회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