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검찰에서 유행하던 말이다. 전두환 정권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당시 검찰 공안부는 검사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던 소위 '끗발 있는' 부서였다. 검찰 최고의 요직으로 꼽히며 주로 동기생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엘리트 검사들이 배치됐다.
영욕의 검찰 공안…46년 만에 간판 뗀다
'공포의 대상' 검찰 공안부가 46년 만에 간판을 바꿔 단다. 정부는 6일 오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및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 등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기존 '대검 공안부'는 '대검 공공수사부'로, '대검 공안기획관'은 '대검 공공수사정책관'으로 이름이 변경된다.
부서 명칭 변경과 함께 공안 업무도 대폭 축소됐다. 공안부의 핵심 업무로 꼽혔던 학원·사회·종교 단체 사건은 업무에서 빠졌다. 대검 공안기획관이 담당했던 공안 정세 분석, 공안 관련 출판물·유인물 분석, 남북교류협력사건수사 기획·지원 업무에서도 손을 뗀다.
"공안은 가지 마라"…바닥 친 사기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단행된 검찰 고위직 및 중간간부급 인사에서도 공안통의 몰락은 두드러졌다. 지난달 26일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14명 가운데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검사는 한명도 없다. 반면 공안통이 거쳐 가는 핵심 요직인 대검 공안부장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엔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이 부임했다.
공안검사들은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지금만큼 바닥을 친 적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한 검사는 "후배가 '어디를 가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공안은 가지 말라고 한다"며 검찰 분위기를 전했다.
애초 공안부를 공공수사부가 아닌 '공익부'로 명칭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땐 반발도 거셌다. "우리가 옷 벗으면 소집해제(공익근무요원에 해당) 되는 거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왔다고 한다.
공안검사들은 일부 선배들의 잘못으로 인해 공안부 전체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싸잡아 매도당한다며 억울해한다. 공안통인 현직 검찰 간부는 "공안검사 대부분은 헌법 최고 가치인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겠다는 자세로 일해왔다"며 "일부 잘못된 검사들이 있었지만 그걸 공안검사 전체가 그런 것으로 매도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 vs "정권의 하수인"
물론 중앙수사국 발족 이전에도 공안 업무는 있었다. 법조계에선 '공안검사'의 시초로 고 오제도 변호사를 꼽는다. 2001년 84세로 세상을 떠난 오 변호사는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한국판 마타하리'로 불리는 여간첩 김수임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해방 이후 간첩 색출에 명성을 떨쳐온 오 변호사는 당시 북한의 저격대상 1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8년엔 북에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의형제를 맺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까지 주로 대공 사건을 처리하던 검찰 공안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이후엔 시국사건이 급증하며 선거·노동·학원·집회·시위 사건까지 모두 맡게 됐다. 정권의 정통성이 확립되지 않았던 당시 독재권력을 대신해 민주화 운동에 나선 국민을 대거 사법 처리했다는 오명도 들었다. 대표적으로 1967년 동백림(東伯林)사건, 1971년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간첩단사건 등이 꼽힌다. 이외에도 권위주의 정권 당시 공안검사들은 국가보다 정권의 안위를 더 중시하는 '정치검찰'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