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대만 타이베이 국가양청원(國家兩廳院,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백조의 호수’를 관람했다. ‘진짜’ 콜레스니코바와 SPBT의 아시아 투어였다. 2011년부터 거의 매년 정기 투어를 해온 대만에선 1200석 공연장이 꽉 찼을 뿐 아니라 사인회를 기다리는 수십m의 인간 띠가 대극장 외벽을 둘러쌌다. 다음날인 4일 인근 호텔에서 만난 콜레스니코바는 나흘 간 총 5회의 공연에도 지친 기색 없이 기자를 맞아줬다. 인터뷰 현장엔 남편이자 1994년 SPBT 창립자인 콘스탄틴 타치킨 대표가 함께 했다.
- 나흘 동안 ‘라 바야데르’와 ‘백조의 호수’를 연속 공연했다. 체력 관리가 힘들었을 텐데.
“지난해 런던 공연 땐 11일간 아홉 번 무대에 섰다(웃음). 이런 투어에 적응된 데다 객석의 호응에 힘을 얻는 게 크다. 러시아어로 “오이처럼 상쾌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커튼콜 땐 그런 걸 느낀다.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 아니라 내 이름이 걸린 공연이니까 욕심이 난다.“
'백조의 호수' 주역만 1000회 이상 무대
서울 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발레 시어터
'백조의 호수' 1인 2역 이리나 콜레스니코바
'장신' 무기로 대만 공연서 환상의 푸에테
마린스키 소속 김기민과도 찰떡 호흡 과시
"체력 위해 '매일 홍삼 먹어라' 조언 들어"
콜레스니코바는 한쪽 다리를 접은 채 턴하는 동작에서 일반적으로 한번에 2~3회 도는 걸 최대 4회까지 돌 정도로 균형감이 완벽하다. 그는 “늘 되는 건 아니고 조명, 음악 등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질 때 도전하는데 오늘(4일) 잘 됐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춤을 추다보니 그런 기술 적용이 가능하다. 한번 도전해볼까 싶은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며 웃었다.
- 빅시어터 소속이 아니라 아쉬움도 있겠다.
“아무래도 레퍼토리의 제한이 있다. 컨템퍼러리 안무도 해보고 싶은데 (늘 하는 것에) 갇혀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젊은 시절부터 많은 기회를 얻은 것은 행운이다. 한때 러시아 국립무용단 소속이었던 적도 있지만 그땐 메인 무용수에 밀려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다. 여기 왔을 때 예술감독이 ‘네가 일을 사랑하면 무대에 서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게 됐다. 세계 여러 곳을 누비며 순회공연 하는 것도 즐겁다.”
"김기민과 조율된 바이올린처럼 잘 맞아"
“우린 잘 조율된 바이올린 같다고나 할까. 연기할 때 감정적으로 합이 맞는 게 느껴진다. 좋은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싶은 것처럼 듀엣 무대를 계속 하고 싶은 감정이 들게 한 배우는 처음이다. 언젠가 한국에서 기민과 함께 ‘라 바야데르’ 같은 작품을 공연할 수 있길 바란다.”
- 이번 내한과 관련해서 김기민이 어떤 조언을 해줬나.
“(웃음) 홍삼을 먹으라고 했다, 하루 두 번. 그리고 ‘한국 관객들은 진실하니까 공연이 마음에 들면 따뜻하게 맞아줄 거다’라고 하더라. 사실 2005년 대구(국제무용제)에서 ‘지젤’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최대한 도와주려 한 한국인들 인상이 따뜻하게 남아 있다.”
이는 “비대한 행정 인력을 줄이고 공연 본질에만 집중한 결과”라고 타치킨 대표는 설명했다.
“처음부터 독립적이고 대중적인 극단을 꿈꾸었다. 젊은 관객들로부터 ‘발레를 처음 접했는데 너무 고맙다’ 등 메시지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낀다. 25년 전 처음 투어 전문 발레단을 만들었을 때 정부 지원도 없이 힘들 거란 얘기를 들었지만 여태 공연을 해옴으로써 가능하단 걸 증명했다.”(타치킨 대표)
콜레스니코바는 5세 딸 아이를 둔 '엄마 발레리나'다. 최근엔 바가노바 발레학교 아카데미에서 지도자 학위를 땄을 정도로 ‘일 욕심’이 많다.
“매일 버릇처럼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살피죠. 발레는 내 직업이자 일상이고 인생이예요.무용, 육아, 공부 다 하기 힘들긴 해도 최대한 오랫동안 춤추고 싶은 게 소망이에요. 이번 내한이 잘 돼서 또 다른 레퍼터리로 만나길 바래요.”
타이베이=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