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고위 관계자는 4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 참석에 앞서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시행령 개정이 필요한 문제여서 효과가 발생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일본도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앞서 우리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수출 제한 공세를 선행했듯이 우리도 일본의 핵심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와 투트랙으로 경제 맞대응 진행"
"일본도 산업 피해 가시화돼야 협상 출구 열릴 것"
당·정·청 협의선 소재·부품 산업 1조원 지원 등 수비책 공유
이 같은 분위기는 이날 열린 당·정·청 협의 모두 발언에서도 감지됐다. 회의장 벽면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은 다릅니다. 다시는 지지 않습니다’란 문구가 씌어진 배경막이 새로 걸렸다. 이전에는 ‘민생 평화 정의 국민과 더불어 새로운 100년’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일본은 우리와의 외교적 협의도, 미국의 중재도 일부러 외면하고 우리에 대한 경제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며 “일본의 잇따른 조치에 따라 한·일 양국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세계 경제와 동북아 안보에 관한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이 정녕 이런 전개를 원했는지 묻고 싶다”말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아베 정부는 일본의 과거를 부정했고 한국의 미래를 위협했다. 단기적으로 피해가 없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독립운동을 다시 떠올렸다. 이 원내대표는 “3·1 운동 100주년, 임정 100주년을 맞아 제2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한·일 경제 대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국회는 당면한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경제 임시정부를 자임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날 신흥무관학교가 수많은 독립운동의 핵심 인재를 키워낸 것과 같이 수많은 다종다양한 기술 무관학교들이 들불처럼 중흥하도록 경제적·재정적·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날 협의에서는 그러나 상대적으로 수비 대책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진행됐다. 당·정·청은 2020년 본 예산에서 1조원 이상을 소재·부품 산업 지원에 투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외에 2021년 일몰예정인 ‘소재·부품 전문기업의 육성에 관한 특별 조치법’의 적용 대상에 장비 산업을 추가하고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등 정부가 기존에 발표한 대책들에 대한 당·정·청 간 공유가 이뤄졌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공급기업과 수요기업 간의 상생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향후 5년간 100개의 소재·부품·장비 전문기업을 지정 육성하며 ▶연구개발(R&D) 투자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재계와 여권에 따르면 이와는 별도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관련 청와대 상황 반장인 김상조 정책 실장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삼성ㆍ현대차ㆍSKㆍLG 등 4대 그룹 부회장급 인사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날짜는 8일이 유력하다.
한편 민주당은 범정부 차원에서 설치되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위원장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별도로 정세균 의원을 좌장으로 하는 일일 점검대책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 측은 그동안 이해찬 당대표 주재로 열린 현장간담회와 민주연구원이 진행한 경제단체 비공식 간담회 등에서 수렴한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 측에 전달했다”며 “5일 정부 관계장관회의를 거쳐 세부적인 정부 대책이 발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이날 회의 주제로 예상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문제 등은 다뤄지지 않았다. 조 정책위의장은 “경제적 맞대응 조치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은 정부 차원에서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지소미아 문제는 향후 종합적으로 다룰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소미아는 별도로 파기 통보를 하지 않으면 자동 연장된다. 통보 시한은 이달 24일이다.
임장혁·이우림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