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32)
살아가면서 묘수를 내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묘수란 신통한 효과를 가져오는 절묘한 수를 말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녔는데도 차도가 없다가 어떤 민간요법으로 치료가 되었다면 그것은 묘수라 할 만하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은 분야에 뛰어들었는데 의외로 성과가 있었다면 역시 묘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묘수를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둑에서는 묘수보다 정수를 둘 것을 권한다.
묘수는 상식을 넘어선 곳에
원래는 하버드 학생만 이용하던 사이트였던 페이스북이 주변의 학교로 퍼져나가면서 학교 네트워크 사이트로 유명해졌다. 이후 일반 사용자까지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도록 확대됐다. 페이스북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2017년 미국의 상장기업 중 시가총액 6위에 해당하는 거대 기업이 됐다. 대학생이 창업한 프로젝트가 그야말로 대박을 낸 묘수가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묘수는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나오는 수가 많다.
바둑에서도 묘수는 다 죽어가던 대마를 회생시킬 때 사용한다. 또한 상대방의 대마를 멋진 수로 잡을 때도 묘수라고 한다. 이런 묘수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 누구나 상쾌함을 느낀다. 바둑의 고수도 묘수를 좋아하긴 한다. 바둑기술 분야에 ‘사활 묘수풀이’라는 부문도 있다. 프로가 되려면 이런 묘수를 모두 익혀야 한다. 하지만 프로기사는 바둑을 둘 때 묘수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바둑 격언 중에 ‘한 판에 묘수 세 번 나오면 진다’는 말이 있다. 얼핏 보기엔 이상한 격언이다. 묘수가 한 방만 나와도 효과가 클 텐데 세 번이나 나왔다면 얼마나 유리하겠는가. 그런데 묘수를 세 번 두면 진다니. 그 뜻은 이렇다. 바둑 한판을 두면서 묘수를 세 번씩이나 두어야 했다면 그 바둑은 정상적인 바둑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인생에서도 대박을 세 번씩이나 내면서 살아왔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으로 살지 않았다고 하겠다.
고수의 시합에서 묘수를 세 번 둔 케이스가 있다. 옛날 일본에서 명인기소라는 바둑 관직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절 ‘전투 13단’으로 불린 당시 최고수 죠와 명인이 라이벌 가문의 제자 인데쓰를 꺾었다. 그때 죠와 명인은 세 개의 묘수를 두어 이겼고, 패한 인데쓰는 몇 달 후 피를 토하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죠와는 제자들에게 그 바둑을 종종 보여주며 묘수의 의미를 설명하곤 했다. 그런데 15살 막내둥이 제자가 뒷전에서 죠와가 둔 수를 지적했다. “스승님이 잘 두셨지만, 실은 초반에 잘못 둔 수가 있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 제자가 죠와 명인에게 일러바쳤다. 새파란 제자가 스승이 둔 수를 비판한다면 파문감이 분명했다.
그러나 죠와는 제자를 혼내지 않았다. 막내 제자가 지적한 것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그 제자가 말한 대로 정수를 두었다면 고심하며 억지로 묘수를 내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죠와 명인은 그 제자가 바둑에 재주가 있다고 보아 훗날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묘수보다 정수 추구해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