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11시 자유한국당 일본수출규제대책특위 3차 회의 직전. 국회 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온 나경원 원내대표는 곧바로 황교안 대표실로 향했다. 회의 발언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황 대표는 대책특위 회의를 가기 위해 대표실 밖에 있었다. 둘은 회의를 가는 도중 딱 붙어서 긴밀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걷는 도중 나 원내대표가 잠시 뒤처지자, 황 대표는 “제 옆으로 오시라”며 걸음을 늦췄다. 그러자 나 원내대표는 “이제는 대표님 오른쪽에서 걷는 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당 지도부 인사는 “나 원내대표는 황 대표와 회의가 있으면 항상 먼저 대표실을 방문해 현안 보고를 한 뒤 같이 이동한다. 역대 어느 투톱(대표-원내대표)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이라고 전했다.
현재 한국당 투톱의 '케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하지만 초반 둘은 다소 삐걱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정계 입문하면서 스포트라이트가 일거에 집중됐기에 둘 간에 미묘한 긴장감 같은 게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황 대표가 입당한 다음날(1월 16일) 열린 자유한국당 연찬회에서 나 원내대표는 ”‘친박-비박’을 넘어섰더니 ‘친황’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①호흡은 OK, 경쟁에서 공생으로
4월 재·보궐 선거를 사실상 승리로 이끈 뒤 양측의 신경전은 적지 않았다.
4월 말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밤샘농성 등 대여투쟁을 주도하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이후 5월에는 황 대표가 전국을 돌며 장외집회를 주도했다. “최악의 경제를 만든 문재인 정권은 분명 최악의 정권”(5월 22일 페이스북) 등 독한 언어를 내놓았다.
당시 정치권에선 한국당이 원 내외에서 투쟁 수위를 최고조로 올리는 배경엔 투톱 간의 경쟁심리도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역인 나 원내대표는 대여투쟁의 중심을 원내로 두는 반면, 원외인 황 대표는 자신의 활동공간이 넓어지는 장외를 선호해 서로에게 적합한 공간으로 끌고 가려 했다는 것이다. '비(非) 배지' 당 대표와 배지 원내대표 간의 미묘함이다. 여기에다 외부에서 지도자로 수혈된 황 대표와, 원내대표를 발판으로 지도자 반열로 올라서려는 나 원내대표 간 긴장도 있었다.
실제로 지방에서 당 의원들이 행사를 열면 대표ㆍ원내대표를 모두 초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실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볼멘소릴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님이 원내전략 짜기도 바쁠 텐데 지방까지 갈 시간이 있겠느냐”는 식이다. 이와 관련 한 한국당 의원은 “인지도로 봤을 땐 나 원내대표의 현장 호응이 더 크다. 갈등 관계를 떠나서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자신보다 더 큰 박수를 받는 다른 정치인이 신경 쓰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5월 한국당 장외투쟁이 일단락되면서 양측의 신경전도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가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황 대표 측 관계자는 “황 대표는 물론 나 원내대표 역시 친박 혹은 비박의 계파색이 강한 이들은 아니지 않나. 자연히 당내 확고한 지지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최근 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두 사람 공히 비판의 대상이 됐다. 자연스레 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나 원내대표 측 인사도 “어떤 사안이 발생해서 나 원내대표에게 ‘황 대표와 상의해보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건의 드리면 ‘이미 통화했다’는 답을 들을 때가 많다"고 했다.
②시너지는 아직
다만 당내에선 둘의 조합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법조인 출신의 엇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어 시너지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친밀감·소탈함·포용력 등 인간적 체취가 강한 정치인이 아니란 공통점도 있다.
한국당의 한 초선 의원은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모두 법조인이다 보니 논리에 강하지만 정치적 상상력이나 감성을 파고드는 언어에는 약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야당 지도부라면 설명하기보다 강한 야성으로 맞받아쳐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여권의 토착왜구 공격에 논리적으로만 반박하다 보니 '친일 프레임'에 계속 함몰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한국당 중진 의원은 "정치판에서 이기려면 때론 거친 싸움도 필요한데 둘은 이에 대해 근본적 거부감이 있다"며 "둘이 회의 석상에서 내놓는 언어가 정제되고 논리정연하긴 하지만, 대중의 가슴을 흥분시키진 못한다. 자칫 ‘잘난 척 콤비’로 보일 수 있다”고 전했다.
양측은 부인하지만 공교롭게 주요 보직이 상당수 친박계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도로 친박당’이라는 프레임에 묶여버린 것도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위기에 맞을 때마다 신인 발굴로 판을 흔들곤 했다"며 "황교안-나경원 투톱은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과감한 외부 수혈로 보수진영의 세대교체를 주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성운·김준영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