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사건에 자극을 받아 홍콩에서 테러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한 대처 방안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홍콩주둔 중국군을 안내하는 ‘인간 구글맵(Google Map)’ 즉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뤼빙취안은 홍콩 당국은 이를 민감 사안으로 간주해 공개하지 않았지만 2001년 10월 16일 중국 ‘난팡망(南方网)’에 관련 사항이 보도됐고 자신이 이를 홍콩 경찰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난팡망에 따르면 중국군의 홍콩 개입은 모두 7단계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
첫 번째는 자체 힘으로 사태를 제어할 수 없게 된 홍콩 보안국(保安局)이 홍콩특구 장관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홍콩주둔 중국군의 지원을 건의한다. 두 번째, 특구 장관은 중국 중앙 정부에 개입을 건의한다. 세 번째, 홍콩 보안국이 홍콩 주둔군에게 상황을 귀띔한다.
네 번째, 중앙 정부가 중앙군사위원회에 통보한다. 다섯 번째, 중앙군사위원회는 연합참모부와 남부전구(南部戰區), 홍콩특구 정부, 홍콩주둔군에 알린다. 여섯 번째, 홍콩 경찰 총부에 최고지휘센터를 세운다. 끝으로 홍콩주둔군이 부여받은 임무를 독자적으로 완성한다.
난팡망은 홍콩주둔군의 개입이 48시간 안에 이뤄진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병력이 투입될 건가. 초기에 8000명 정도의 병력이 개입할 것으로 난팡망은 전했다. 홍콩과 이웃한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서 각 절반씩 차출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홍콩에는 중국의 육·해·공군이 약 6000~8000명 가량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홍콩 사태가 격화됨에 따라 홍콩에 투입할 병력 준비가 더 많이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뤼빙취안은 봤다.
광둥성 후이저우(惠州)에 근거지를 둔 중국 인민해방군 제74집단군이 최근 잔장(湛江)에서 반테러 군사훈련을 한다고 밝혔는데 이게 바로 홍콩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분석된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1개 집단군은 대략 6만 명에서 7만 명 사이다. 홍콩 사태가 악화할 경우 중국의 수만 인민해방군이 밀고 내려올 수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부적인 행동 계획에 따르면 홍콩 경찰과 주둔군의 역할이 나뉜다.
우선 홍콩 경찰과 주둔군 사이엔 핫라인이 개설된다. 이후 좁고 복잡한 홍콩의 지형을 잘 아는 홍콩 경무처의 고위 간부가 최고지휘센터에서 지휘를 맡는다. 중국군은 홍콩 경찰의 도움을 받아 홍콩 곳곳에 투입돼 ‘시가전’에 돌입한다.
중국군은 거리 폐쇄, 폭동 진압, 구조 작업 등에서 최고지휘센터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지만 일단 임무가 전달되면 이를 완성하기 위해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게 되며 보다 현대화된 무기를 사용할 전망이다. 홍콩 시위대의 부상 염려가 커진다는 이야기다.
현재 홍콩의 헌법 역할을 하는 ‘기본법’ 14조는 “홍콩특구 정부는 필요할 경우 중앙인민정부에 사회치안 유지와 재난구조를 위해 주둔군의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9일 중국에서 홍콩 사무를 총괄하는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HKMAO)이 홍콩 반환 이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한 자리에서 양광(楊光) HKMAO 대변인은 홍콩 사태에 중국군 개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기본법에 관련 조항이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한 바 있다. 경우에 따라선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