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리펑은 이후 98년까지 총리를 지냈고, 이후 2003년 3월까지 우리의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지냈다. 권력 2위로 군림한 기간은 16년이었다. 리펑은 28년 10월 중공 저장(浙江)성 군사위원회 서기인 리숴쉰(李碩勛)과 비밀당원 자오쥔타오(趙君陶) 사이에 태어났다. 그러나 리숴쉰이 31년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체포돼 사망한 이후 10세 때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양자로 입양됐다. 저우는 대장정 후유증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 덩잉차오(鄧潁超)와 함께 여러 혁명 열사의 자제를 양자로 입양했는데 그중 하나가 리펑이었다.
16년간 중국 2인자 … 향년 91세
천안문 사태 때 무력진압 주장
리펑의 생애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은 89년 천안문 사태다. 그해 4월 15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사망을 계기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자 그는 양상쿤(楊尙昆) 주석 등과 강경 진압을 주장했고,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승인 아래 6월 3일 밤 천안문 광장의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
천안문 사태는 ‘인민의 아들’ 중국 인민해방군이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눴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의 큰 오점이 되고 있다. 리펑은 부인 주린(朱琳)과의 사이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뒀다. 아들 리샤오펑(李小鵬, 60)은 현재 중국 국무원 교통운수부 부장(장관)으로 있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