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건조된 DN5505호(1999t급)는 과거 북한과 일본을 오가던 만경봉92호보다 5년 정도 선령이 많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령만 놓고 보면 당장 폐선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고등국방연구센터(C4ADS)가 북한행 벤츠를 나른 것으로 발표했던 이 배가 고철인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재정적 부담이 적은 고철 수준의 선박을 사들인 뒤 선명을 바꾸는 일종의 ‘세탁’을 한 뒤 제재 대상 물자의 수송에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이 제재 상황에서 외화벌이를 하기 위해 각종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을 것"이라며 "만에 하나 선박이 억류되더라도 손실을 줄이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987년 건조한 낡은 화물선, 저가 매입"
원 소유주 선사는 미 재무부 제재 대상
적재 중량상 벤츠 이외 다른 물자도 실려
카트린호도 '선명 갈아타기' 수법 써
이후 DN5505호는 빈 배로 나간 뒤 지난해 9월 16일 다시 부산에 들어와 677t의 철강제품을 싣고 보름 만인 10월 2일 떠난 것으로 해수부 기록에 나온다. 행선지는 나홋카항이다. 신고 내용대로라면 적재화물의 중량상 ‘김정은 벤츠’ 2대 이외에도 다른 화물이 실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에도 DN5505호는 3차례 국내를 오갔다. 그러다가 지난 2월 북한산으로 의심되는 석탄 3200여t을 싣고 포항 신항에 입항한 뒤 유엔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한국 당국에 억류돼 5개월째 조사를 받고 있다.
같은 달 1일 대북제재를 피해 해상에서 유류 환적을 한 혐의로 한국 당국에 적발된 도영시핑 소유의 유류운반선 카트린호의 행적도 DN5505호와 비슷하다. 에쿠아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3월 27일 전후로 도영시핑은 한국 선사인 B사로부터 이 배를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선명도 D1325호에서 현 카트린호로 개명됐다. 카트린호는 지난달부터 폐선 절차를 밟고 있다. 일종의 고철 해체 작업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대북제재 위반 선박에 대해 고의성이 확인되면 ‘고철 폐기’ 처분을 내린다. 한국은 해상 환적 혐의로 적발된 또 다른 유류운반선 코티호에 대해서도 지난 5월 고철 폐기 작업을 시작했다.
김상진ㆍ오원석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