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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이기흥 IOC 위원에게 거는 기대

중앙일보

입력 2019.07.2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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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 스포츠팀장

이기흥은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다. 스포츠인 출신도 아니고 학력·경력이 화려한 것도 아닌 그가 2016년 선거를 통해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되자 체육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지난달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선출됐다. IOC 위원이 누군가. 전 세계에 115명밖에 없는 말 그대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대통령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국가 원수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는다. IOC 위원은 그만큼 영예로운 자리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이기흥 IOC 위원은 스포츠와는 무관한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그는 1980년대부터 토목건설 업체(우성산업개발)를 운영했다. 그러다 2000년 대한체육회 산하 근대5종 경기연맹 회장을 맡으면서 체육계에 첫발을 들여놓는다. 이어 카누연맹 회장에 이어 2010년에는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맡았다. 2012년엔 한국선수단장 자격으로 런던 올림픽에 갔다. 수영연맹 회장으로 재직 시절엔 검찰 조사까지 받는 홍역을 치렀다.
 
2016년 3월 수영연맹의 부조리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그는 같은 해 10월 선거를 통해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되면서 7개월 만에 다시 체육계에 컴백한다. 여러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이기흥 후보는 총 892표 가운데 294표를 얻었다. 32.9%의 지지율로 운 좋게 대한체육회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 당시 권세를 과시했던 김종 문체부 차관이 현직 대학 총장 후보를 일방적으로 밀자 체육계는 이기흥 후보를 당선시키며 반기를 든 것이다. 이기흥 후보로선 어부지리를 얻은 셈이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또 한번 구설에 오른다. 자원봉사자에게 폭언을 했다가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대한체육회와 체육계 전반의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국회의원들에게 호된 질타를 받았다.


그래도 그는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는 지난해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세계 스포츠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건희 전 IOC 위원이 물러나면서 공석으로 남아있던 한국 몫의 IOC 위원 한자리는 원래 다른 체육계 인사에게 돌아갈 것이 유력했다. 그러나 70세 이상은 IOC 위원이 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라 그가 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또다시 어부지리를 얻은 셈이다. 이기흥은 집념의 사나이다. 뚝심의 승부사다. 그가 대한체육회장과 IOC 위원에 선출된 건 순전히 어부지리라고 단정 짓는 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운 좋게 명예로운 자리에 오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2020 도쿄 올림픽이 이제 꼭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기흥 IOC 위원의 앞에는 풀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다. 예전에는 엘리트 체육을 지원해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많이 따면 됐지만, 21세기 한국 스포츠계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당장 문체부 스포츠 혁신위원회는 한쪽으로 치우친 한국 스포츠가 균형을 찾아야 한다며 소년체전 폐지와 스포츠 클럽 활성화 등의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선 그동안 국위를 선양한 엘리트 스포츠를 적폐로 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맞선 상태에서 내년 도쿄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더구나 정부는 2032년 남북 공동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서 열겠다며 올림픽 유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기흥 IOC 위원은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을 맡고 있다. 법명이 보승(寶勝)이다. ‘보물과 승리’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그의 법명처럼 국내외 스포츠 무대에서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해 한국 스포츠가 발전하는데 주춧돌이 되길 바란다.
 
정제원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