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도 그랬다. 2000년 이후 확고히 자리 잡은 3국 분업은 세계시장에서 맹위를 떨쳤다. 일본의 자본재를 한국에서 중간재로 들여와 중국에서 최종 소비재로 만들어 파는 구조는 세상에서 무적이었다. 2010년 무렵엔 ‘중국제 없이 살아보기’가 세계 각지에서 시도됐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말로는 중국제였지만 따져 보면 한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듬뿍 들어간 제품이었다. 자연스레 무역도 이에 맞춰갔다. 한-중 간 무역에서는 한국의 기술 우위를 의미하는 고부가 수직적 무역 비중이 중간재의 경우 2000년 16.3%에서 2014년 49.1%로 증가했다.
일-하이, 한-미드, 중-로우
지역화 성공해 20년간 세계 제패
일본의 수출 규제는 자가당착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도 이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겨냥한 수출규제는 한국이 직접 타격을 입지만 결국 중국과 일본도 피해를 본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중국 생산 비중이 품목별로 25~40%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지장이 생기면 국제가격이 오르고, 결국 반도체를 많이 쓰는 일본의 전자산업 등이 타격을 입는다.
고순도 불화수소 등 해당 품목들은 공교롭게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꼭 필요한 품목들이다. 최종 생산품에 들어가진 않지만, 생산단계에서 수백번 쓰인다. 1~5월 대일 수입액이 3000만 달러 이하(불화수소)로 적다고 무시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화수소가 대체 불가능한 재료도 아니다. 지금은 생산하지 못하지만 1~2년 내 국내 중소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수입선도 다변화될 것이다. 결국 나타날 결과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붕괴가 아니라 대일 의존 탈피다.
이미 국내에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맥주나 의류 등 일본산 소비재를 사지 말고 일본 여행도 가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진다.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이겠지만 그 여파가 꽤 크다. 더 큰 문제는 일본으로부터 자본재를 사온 기업들의 불안감이다. 생산에 일상적으로 써오던 물품이 어느 날 갑자기 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일제의 국산품 대체와 수입처 변경 움직임을 가속할 수 있다. 그 결과는 3국 분업에서의 일본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옥죄는 중이다. 중국의 거의 모든 수출품에 25% 관세를 매기고 추가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명목상 중국을 겨냥하지만 사실상 3국 분업에 대한 견제이기도 하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난 1분기 중국에 대한 수출이 줄어 큰 폭의 무역적자를 낸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는 3국 분업을 부추기는 미국을 말리기는커녕 거드는 일이다. 그럴리 없겠지만 3국 분업이 와해한다면 일본의 입지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까? 한국, 그리고 중국을 견제하며 일본만 더 잘나갈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서로 발을 묶고 함께 뛰고 있는 한·중·일 삼국 분업의 붕괴는 지구 위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뜻한다. 세계는 물론 당사국들도 그 피해를 벗어날 수 없다. 그 피해는 한·중은 물론 일본에 막심한 손실을 안길 것이다. 대한 수출규제에 대한 일본의 냉정한 판단이 다시 한번 필요한 이유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