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에르도안과 트럼프
두 정상은 2년 전만해도 거침없이 서로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 대선 직후인 2016년 11월 미국내에서 일어난 반(反)트럼프 시위를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 규정하며 트럼프를 편들고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트럼프가 에르도안의 등을 긁어줬다. 2017년 4월 에르도안이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을 강행하며, 장기 독재의 길을 열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시달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에르도안에게 축하 전화를 건 것이다.
'러시아판 사드' 놓고 갈등 격화
미국 정부는 터키가 S-400을 도입하면 제재를 가하고 F-35 스텔스 전투기를 터키에 판매하지 않겠다고 경고해왔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14일 “이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 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도 16일 “터키에 말한다. 앞으로 당신들에게 F-35 전투기를 팔지 않겠다”고 맞불을 놨다.
에르도안 정적·쿠르드족 문제가 갈등 원인
이에 반발한 에르도안은 2017년 3월과 10월 터키 주재 미국영사관의 터키인 직원을 각각 쿠르드노동자당(PKK) 지지와 귈렌 추종 혐의로 체포하며 트럼프를 자극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지난해 8월 터키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며 보복 행동에 나섰다.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두 배로 높였다. 이같은 조치에 터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며 터키 경제가 악화되자, 에르도안은 결국 무릎을 꿇고, 그해 10월 브런슨을 미국에 송환했다.
에르도안은 쿠르드족 문제에서도 트럼프에 불만이 있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터키는 YPG를 자국 내에서 분리독립을 꾀하는 PKK와 연계된 테러단체로 규정한다. 에르도안은 트럼프가 전임 대통령과 달리 쿠르드족과의 연계를 끊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다른 정책 변화가 없었다. 에르도안의 트럼프에 대한 실망은 갈수록 커졌다.
에르도안 친러 행보…트럼프 고민
당연히 미국은 에르도안의 친러 행보에 반발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6일 “‘적대세력에 대한 통합제재법’(CAATSA)에 있는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CAATSA는 러시아·북한·이란 3개 국가와 군사 거래를 하는 단체나 국가에 대해 미국이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법이다.
트럼프는 브런슨 목사가 지난해 10월 석방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오바마 정부가 터키에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판매하는 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에르도안이 S-400을 구매했다"고 옹호했다.
이어 “터키가 러시아산 미사일을 샀기 때문에 미국은 그들에게 F-35를 팔 수 없게 됐다”며 "(F-35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이 이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기 수출을 강화해 미국 경제 활성화를 노리는 트럼프 입장에선 무기구매의 큰 손인 터키를 놓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실제로 이스마일 데미르 터키 방위산업청장은 18일 “러시아도 전투기 구매를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귈렌 송환 여부
두 사람 간의 갈등이 풀릴 여지는 아직 남아있다. 만약 트럼프가 에르도안이 원하는대로 귈렌을 터키로 송환한다면 두 정상의 관계가 급속히 회복될 수 있다. 실제로 미 정부가 브런슨 목사 송환에 대한 보답으로 귈렌 송환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지난해 12월 나오기도 했다. 미 정부는 이를 공식 부인했다.
그럼에도 귈렌 송환은 트럼프가 에르도안의 마음을 돌릴 가장 효과적인 카드란 분석이 나온다. 에르도안도 트럼프와의 갈등을 풀어야 할 이유가 있다. 미국이 실제로 터키 제재에 나설 경우 안 그래도 어려운 터키 경제가 더욱 나빠져 자신의 권좌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