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리아 킴이 대표 안무가로 이끄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이하 원밀리언)도 K댄스의 성지로 거듭났다. 동영상 플랫폼을 매개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중심축이 옮겨 왔다면, 매일 새로운 안무 영상이 업로드되는 원밀리언의 유튜브 채널은 나도 직접 ‘추는’ 음악으로 신세계를 열었다. 개설 4년 만에 구독자 수 1654만명을 기록했고, 구독자 중 95%가 해외 거주자다. 이는 K팝의 모든 뮤직비디오가 유통되는 원더케이(1723만) 같은 플랫폼에 맞먹는 규모다. 리아 킴·메이제이 리 등 소속 안무가를 중심으로 한 팬덤도 생겨났다. 나이키 우먼스는 최근 리아 킴 등 댄서 6명을 글로벌 모델로 발탁하기도 했다.
댄스 스튜디오 이끄는 리아 킴
이효리·선미 등 춤 가르친 안무가
‘추는’ 음악의 신세계로 팬덤 구축
“커피숍 가듯 쉽게 춤추러 오길”
그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99년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무대를 TV에서 보고 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댄스 학원을 섭렵하며 기본기를 마스터했고, 고교 졸업 후 유명 댄스팀 ‘위너스’에 들어가 영재 육성반을 가르쳤다. 현아·효연·씨엘·민 등이 그 때 만난 제자들이다. 일찍 성공을 맛본 셈이었지만, 그 열매 역시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도 일찍 깨우쳤다. “대회에서 우승하고도 딱 3일 기뻤어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꼽등이가 나오는 지하 연습실과 고시원을 오가는 삶이었으니까요.”
그는 “그때 바닥을 쳐서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같이 춤췄던 사람들은 비아냥거렸지만 되려 제 이름이 더 알려지는 계기가 됐어요. 그 후 작업한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 ‘가시나’, 트와이스의 ‘TT’ 등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누가 안무를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작곡가·작사가처럼 안무가도 번듯한 직업처럼 인식되기 시작했죠. 사실 그 전까지는 춤춘다고 하면 밥벌이도 못 한다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춤은 취미로나 추는 거지 하면서.”
안무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급박하게 이뤄진다. 노래가 완성되고 주어진 시간은 2주 남짓에 불과하다. 그는 “의뢰를 받으면 노래의 캐릭터를 먼저 잡고 진행한다”며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라고 밝혔다. 영화 ‘블랙스완’에서 모티브를 얻어 ‘24시간이 모자라’를 만드는 식이다. 아이오아이나 에버글로우처럼 처음 만난 경우에는 안무 작업에 앞서 미팅을 통해 최대한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그들이 가진 본연의 모습이 춤에도 녹아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14년 연말 그는 지하실을 전전하던 브레인 댄스 스튜디오를 접고, 볕 잘 드는 지상 3~4층에다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크롭탑과 레깅스를 입기 위해 한 달 반 동안 10㎏을 감량하고, 춤출 때마다 흘러내리던 머리카락도 잘라 버린 직후였다. 실연한 사람마냥 새 출발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발간한 에세이 제목도 『나의 까만 단발머리』(아르테)다. ‘똑단발’로 변신 후 모든 일이 다 잘 되기 시작했다는 이유에서다. 원밀리언은 오는 11월 성수동 단독 건물로 이사를 앞두고 있다. 소속 안무가만 20명, 지난해 연 매출 30억원 규모로 커진 지금 그는 이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당초 목표인 ‘원밀리언’은 이미 넘어섰지만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춤출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에 가듯 출퇴근하다 편하게 들러서 춤출 수 있는 공간이요. 사실 훈련을 통해 얻어진 높은 완성도가 K댄스의 장점이지만,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획일화된 모습이 단점이기도 하잖아요. 자신에게 심취해 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춤을 잘 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