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밀려난 전모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가 사정 당국자에게 이 전 대통령의 의혹 자료를 요구했다가 이 전 대통령이 뒤늦게 알고 질책한 게 계기였다고 추정되고 있다.
고인은 이후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 등 권력 주변의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2008년 3월 “권력을 사유화한다”고 비판한 데 이어 이상득 전 의원의 불출마와 2선 후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른바 ‘55인 파동’이었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과는 더 멀어졌다. 고인은 이 무렵 사석에서 “젊은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한다는 데 의리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양쪽을 다 아는 인사들은 “2011년 무렵까진 그래도 이 전 대통령이 불러줄 것이란 기대가 있었던 듯하다”며 “어느 날인가 펑펑 울곤 마음을 정리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고인은 경기고-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무총리실에서 주로 근무했다. 전형적 ‘모범생’형 이력이나 실상은 다채로웠다. 당구장 집 아들로 소년 시절 이미 당구가 200이었으며 경기고 재학 중엔 밴드의 보컬을 담당했다. 공무원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분홍색 와이셔츠를 입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공무원 생활을 접고 탤런트가 되려 하다 가족들의 만류로 그만둔 적도 있다. 그는 정치인이 돼서도 음반을 내고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스스로 “가수”라고 소개하길 즐겼다.
정치에 입문한 건 2000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였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원외 위원장 시절이던 2002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찾아오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을에서 당선된 이후 그곳에서 내리 3선 했다.
고인은 낙선 시절엔 MBN ‘판도라’ 등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한 방송 활동을 했다. 16일 오전에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한·일 관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12월엔 서울 마포에 일식집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과 가까운 사이인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고인이 우울증을 앓았다고 전하며 “(우울증은) 정치를 하며 숙명처럼 지니는 것이다. 상태가 상당히 호전돼 식당도 하고 방송도 활발히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고인 스스로 과거 한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 친이계 인사는 “친이명박계와 결별한 뒤 정치적으로 고립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안다. 특히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정치적 무력감에 대해 힘들어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고정애·유성운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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