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10일(현지시간) 미 워싱턴을 방문했다. 예고된 방미가 아니었다. 김 차장은 이날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을 만나 “미 백악관 그리고 상ㆍ하원을 다양하게 만나서 한ㆍ미간 이슈들을 논의할 것이 많아서 왔다”고 설명했다. 또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 때문에 미국에 중재를 요청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하자 “당연히 그 이슈도 논의할 거다”라고 답했다.
이와 별도로 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도 이날 롤랜드 드 마셀러스 미 국무부 국제금융ㆍ개발담당 부차관보와의 한ㆍ미 고위급경제협의회(SED) 국장급 협의를 위해 워싱턴에 도착했다. 김 국장은 마크 내퍼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도 만나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알린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만나기 위해 다음 주 방미한다.
10일 밤(한국시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통화도 이뤄졌다. 통상 한ㆍ미 외교장관 간 협의의 주된 의제는 북핵이나 한ㆍ미동맹이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강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는 우리 기업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체계를 교란해 미국 기업은 물론 세계 무역 질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일본의 조치 철회를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또 “이는 한ㆍ일 양국 간 우호 협력 관계 및 한ㆍ미ㆍ일 3국 협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본의 보복 조치가 북핵 대응 등을 위한 한ㆍ미ㆍ일 3각 공조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통화는 한국 시간으로 10일 밤 11시 45분부터 15분 간 이뤄졌다. 아디스아바바 현지 시각으로는 오후 5시 45분이다. 강 장관은 이날 오후 사흘레 워크 제우데 에티오피아 대통령 예방,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헌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었지만 폼페이오 장관과의 통화를 최우선에 뒀다고 한다. 외교부는 일본 조치와 관련해 한ㆍ미 간에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일부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통화 직후인 11일 새벽 2시 1분에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답변은 다소 원론적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이해를 표명했다”는 게 외교부가 소개한 폼페이오 장관의 반응 전부다. 외교적 협의에서 이해한다(understand)는 상대방의 입장을 잘 알겠다는 뜻이다. 동의한다(agree), 같은 생각이다(on the same page), 지지한다(support) 등과는 결이 다르다. 외교부는 “강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은 한ㆍ미 및 한ㆍ미ㆍ일 간 각급 외교채널을 통한 소통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한ㆍ미 장관의 통화와 관련,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정부는 17일에는 서울에서 대미 설득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취임 뒤 처음으로 방한해 청와대 및 외교부 인사들과 상견례를 하는 데이비드 스틸웰 신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상대해서다. 스틸웰 차관보는 한국에 오기 전 일본을 먼저 들를 예정이라 정부는 더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강 장관도 당초 아프리카에 더 길게 머물 계획이었지만, 스틸웰 차관보와의 면담을 위해 일정을 당초보다 줄였다고 한다. 강 장관은 16일 귀국한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