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연의 연출자는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다. 오페라와 현대무용의 콜라보라니, 어쩌면 이 시대 가장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끼리의 조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잠시 한눈 팔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춤의 향연을 펼치는 안성수 안무 코드를 기억한다면, 그런 걱정은 애초에 무의미하다. 그는 “전개가 빠른 드라마처럼 다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지향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첫 오페라 연출에 그대로 적용했다.
배경은 ‘마하고니’라는 가상의 도시다. 마하고니는 ‘그물망 도시’라는 뜻으로, 그물처럼 사람들을 붙잡아 재산을 탕진하게 만드는 곳이다. 이 도시에 알래스카에서 돈을 번 벌목공들이 모여들고, 벌목공 지미는 매춘부 제니와 사랑에 빠지지만, 방만한 자유에 빠져 인생을 망치고 만다. 일견 젊은 남녀가 첫 눈에 반했다가 비극적 죽음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오페라의 낭만적 세계관을 따르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사랑조차 상품에 불과하다는 차가운 경고다.
[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7월 11일~14일까지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이 만든 '세기의 문제작'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예술감독 총연출로 국내 초연
미니멀하고 세련된 무대 디자인, 전원 똑같이 흰 수트를 입은 15명 무용수들과의 대조가 그런 시각에 확신을 보탠다. 영혼 없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춤추는 허수아비 같은 현대인들을 상징하는 무용수들 사이로 바로크 귀족 의상을 입은 오페라 가수들은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전 시대로부터 타임슬립해 온 옛날 사람들인 것이다.
한 두 장면에 양념 혹은 병풍처럼 무용의 요소가 들어가는 여타 오페라와 달리, 안 연출이 “춤출 수 있는 모든 장면에 춤을 넣었다”고 할 정도로 춤의 비중이 높다. 이를 두고 “과하다” “무대가 좁아 보인다”는 지적도 있지만, 무용수들을 극의 흐름 속에 있는 오페라 가수들과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면, 비좁아도 거기 있는 게 마땅해 보인다.
이런 아이러니한 컨셉트는 원작이 쓰여진 1920년대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장르였던 오페라를 ‘낯설게하기’라는 방식으로 개혁하려한 브레히트의 ‘서사적 오페라’에 대한 오마쥬로 볼 수도 있다. 극의 흐름을 깨고 몰입을 방해하는 나레이션으로 객석에 직접 교훈을 전달하는 서사극의 목표대로다. 독일어 노래와 대사로 전체가 짜여진 가운데 단 한곡의 영어 팝송 ‘알라바마 송’으로 충격을 주거나, 너무도 대중적인 피아노곡 ‘소녀의 기도’를 차용해 ‘음악을 통한 소격효과’를 거둔 것처럼, ‘무용을 통한 소격효과’를 노린 것이다.
무용이 병풍이 아니라 마치 독립된 작품과 같은 존재감 덕에 그 효과는 더욱 배가됐다. 음악·대본·무용·미술이 모두 녹아드는 바그너의 ‘종합예술’ 개념과 달리 오페라에서 각각의 요소들의 독립성을 추구했던 브레히트의 철학대로, 발레 테크닉에 기반하면서도 상체 활용이 두드러진 안성수 특유의 스타일이 뚜렷한 안무가 오페라 무대에서 꿋꿋이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남근·성창용 등 최고 수준 현대무용수들의 빠르고 격정적인 춤사위를 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뮤지컬을 비롯해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새로운 공연 예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탄생하는 세상에서, 오래된 예술 형식 오페라는 무엇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은 현대무용과의 콜라보로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했다 할 만하다. 안성수는 “최고의 블랙코미디식 엔터테인먼트의 완성이 목표”라며 “젊은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무대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엔터테인먼트가 브레히트의 의도대로 관객을 사유하게 할 수 있을까. 안성수가 상징한 감각의 세계에 우선 빠져들어 볼 일이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