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놀라운 것은 CMS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보유한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입자를 가속하고 충돌시키는 기초 연구 시설인 LHC는 그 둘레만 27㎞에 달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의 발밑은 상당 부분 CERN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막대한 투자 CERN 근무 과학자들
‘기초연구→상품→시장’ 인식 공유
“한국도 기초과학 투자 지속돼야”
CMS를 비롯한 입자 검출기의 목적은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의 초기 모습을 재현하고, 당시의 우주가 어떤 원소와 입자들로 이뤄졌는지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당장은 돈도 밥도 안된다는 말이다. 우주를 재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유럽 각국이 이처럼 거대한 기초 연구시설을 구축한 걸까.
CERN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역시 처음에는 양자역학 연구에서 응용됐다”며 “처음부터 산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큰 시장을 이뤘다”고 밝혔다. 기초가 응용돼 제품과 시장이 되고, 나아가 미래 먹거리가 된다는 CERN 과학자들의 인식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 결과 CMS는 2013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며 과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같은 해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다.
한국 역시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21년 대전에 라온 중이온 가속기가, 2023년에는 부산 기장에 의료용 중입자가속기가 차례로 완공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출범 2주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는 올해 사상 최초로 연구·개발 예산 20조원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과학계는 여전히 이 같은 정책이 지속 가능할 지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당시 문 정부 과기정책을 평가한 대학교수들은 “기초과학 정책은 백 년을 내다보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라온 중이온 가속기 건설을 추진 중인 기초과학연구원은 지난해 예산 감축 논란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기초에서 응용이, 응용에서 시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창출되려면 오늘 뿐 아니라 내일의 먹거리를 늘 고민해야 한다. 기초과학은 미래 시장을 여는 초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프랑스 세시에서>
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